출애굽기 강해 5장

출애굽기 5장 내 백성을 보내라

하나님께 소명을 받고 애굽으로 향한 모세는 형 아론과 장로들을 만나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모세와 아론이 애굽의 왕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제사를 드려야 하니 보내달라 말합니다. 바로는 그들의 말을 무시고, 이스라엘의 노역을 더욱 강하게 합니다.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합니다.

출애굽기 5장 구조

  • 1-14절 모세의 요청과 바로의 거절
  • 15-21절 모세를 원망하는 이스라엘
  • 22-23절 모세의 기도

모세는 곧바로 아론과 함께 바로를 찾아가지만 바로는 콧웃음을 치며 가서 일하라고 말합니다. 이전보다 더 강도 높게 일을 시킵니다.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다 표현하는데 ‘딱딱하다’는 말입니다. 돌처럼 딱딱한 바로의 마음을 깨는 작업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바로와 같은 완악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출애굽기 5장 강해

1-14절 모세의 요청과 바로의 거절

출애굽의 의미는

모세와 아론은 바로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절기를 지킬 것이라고 말합니다.(1절) 그러나 바로는 즉각적으로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2절) 연이어서 바로는 자신은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겠다고 강조합니다. 이후에 일어나는 바로의 행동들도 중요하지만 그 출애굽 사건의 핵심에는 ‘여호와가 누구냐?’라는 질문이 들어가 있습니다. 바로는 묻고,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대답하시는 것입니다. 이 대답은 출애굽기 15장 ‘모세의 노래’로 알려진 시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5장을 나중에 하기로 하고 가장 중요한 한 구절만 인용합니다.

  • 11절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할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이 모세의 노래의 핵심입니다. 오직 여호와만이 참된 하나님이시며, 구원자이십니다. 바로의 완악함은 결국 그동안 침묵하셨던 하나님으로 일어나게 하시고, 바로의 질문에 답하게 하셨습니다.

출애굽의 전과정은 하나님이 누구신가 분명히 드러내는 사건이라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믿음의 조상들에게 나타나 언약하셨고, 그 언약이 이루어졌으며, 택하신 백성들을 구원하시며, 거역하는 자들에게 벌을 주신다는 이 단순하고도 명백한 하나님의 자기계시가 출애굽 사건을 통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경고

모세는 곧바로 애굽을 나간다는 표현을 쓰지 않고 ‘우리가 사흘길쯤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가도록 허락하소서'(3절)라고 말합니다. 비겁해 보이는 표현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의 마음을 가볍게 두들기는 마음입니다. 만약 바로가 그것을 허락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출애굽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바로는 거절합니다.

모세는 여기서 단지 허락해 달라는 말만하지 않고 경고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3절 후반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전염병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경고 속에는 내가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이 더보다 훨씬 강하다 그러니 너는 조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바로의 명령

바로는 모세와 아론의 말에 콧웃음을 칩니다. 감독들과 기록원들에게 명령하여 전처럼 짚을 주지 않고, 벽돌을 평일과 동일하게 만들도록 하게 합니다. 바로의 이 말 속에는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보다 높다고 말했음에 화가 단단히 난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는 살아 있는 신이기 때문입니다. 보이지도 않고, 느낄 수도 없는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보다 강하다는 말에 참을 수 없는 모룍을 느낀 것이죠. 그는 자신이 얼마나 강한가를, 진짜 실세가 누구인가를 보여주고 싶어했습니다.

바로의 명령에는 인간의 어리석과 오만, 신처럼 되고 싶어하는 악이 숨겨져 있습니다. 바로를 신으로 섬기는 애굽에서 바로는 정말 자신이 신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이것이 어리석음이며 악입니다.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인간의 타락의 본질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선택할 수 있고,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교만입니다. 타락은 곧 자신이 하나님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자만이자 신처럼 되겠다는 자기 속임입니다.

15-21절 모세를 원망하는 이스라엘

우리를 괴롭히지 말라

두 번째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두 번재는 바로의 교만과 오만함으로 인해 더 깊은 고난을 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것입니다. 바로는 모세와 아론의 이야기를 듣고 곡초를 주지 않고 이전처럼 동일하게 벽돌을 굽게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 온 지역을 돌며 곡초를 모아 벽돌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전에도 힘들었지만 가면 갈수록 너무나 힘든 상황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에게 가서 왜 이렇게 힘들게 하냐고 따졌습니다. 그러자 바로는 모세와 아론이 했던 말을 그들에게 들려주며, 너희들이 게을러서 그렇다고 말합니다. 결국 이스라엘 기록자들은 바로의 화가 자신들에게 미쳤음을 알게 됩니다. 바로 그 때, 길에서 모세와 아론을 만나자 이렇게 말합니다.

  • 왜 너희는 바로에게 그런 말을 하여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느냐


즉. 우리를 힘들게 하지 말라. 그냥 여기서 편하게 살다 죽으면 된다.는 식입니다. 이 백성들의 말은 나중에 출애굽해서 광야에서 끊임없이 반복하여 모세를 괴롭혔던 말입니다.

소명 없는 자의 불만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비전이 없는 자들은 지금 당장의 일로 원망하고 두려워하고 포기하려 합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없는 자들입니다. 믿음은 소망을 부르고, 소망은 현실의 고통을 뛰어 넘게 합니다.

22-23절 모세의 기도

모세는 백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깊은 우울감에 빠져듭니다. 하나님께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모세의 기도 속에는 하나님께서 아무런 역사도 하지 않으시고, 아무런 일도 행하지 않으시면서 자신을 출애굽을 위한 사명자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기도는 이사야의 기도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강합니다. 이사야의 원망은 하나님에 대한 깊은 갈망과 부흥에 대한 기대였습니다. 하지만 모세의 기도는 진짜 원망인 듯 보입니다.

마무리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있습니다. 우린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다 알지 못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사탄도 마지막 때인 줄 알고 분을 내어 신자들을 괴롭힙니다.

  • 계 12: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우리는 영적인 때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며칠 전 무화과 몇 개가 익어 있는 것을 봤습니다. 성경에서 무화과는 여름 과실로, 종말의 때를 의미합니다.

마 24:32-33

  •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모세를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언행과 교만과 어리석음을 모르실리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더 시간이 흘러야하고, 더 많은 수고가 따라야 합니다. 열매 맺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듯 구원도 무르익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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