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역사 7 분열왕국 시대 (2)

분열왕국시대 2 (B.C. 841-722)

오므리 왕조가 몰락한 기원전 841년은 이스라엘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스라엘을 바알 왕국으로 만든 이세벨이 죽었다는 것과 그 이후 이스라엘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남유다는 이세벨의 딸 아댤라가 왕비가 되면서 남유다도 우상숭배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그러나 예후의 등장으로 오므리 왕조는 일시에 제거되고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또 하나는 지금까지는 외부의 세력은 멀리 있는 애굽이나 이스라엘 주변 나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앗수르가 급부상하면서 새로운 긴장의 요소가 됩니다. 

애굽은 거대한 제국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앗수르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지배하면서 애굽과 충돌하게 됩니다. 중간에 자리한 이스라엘은 애굽과 앗수르, 후에는 바벨론 사이에서 계속하여 갈등하게 되고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에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고, 남유다는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게 됩니다.

분열왕국시대 2 개요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인물을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무너진 이스라엘을 세우기 위해 뜻밖의 인물을 준비하셨습니다. 그의 이름은 예후였고,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새로운 역사전 전화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예후는 오므리와 아합, 그리고 아하시야와 요람으로 이어지는 오므리 왕조를 척결하고 예후 왕조를 시작합니다. 물론 예후가 우상숭배를 완전히 끊어내고 거룩한 이스라엘 백성들로 다시 돌이킨 것은 아닙니다. 예후는 혼합주의자였습니다. 예후 이후 이스라엘은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하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이릅니다. 비록 여로보암 2세에 의해 잠깐 동안 옛 영광을 회복하는 듯했지만 결국 기원전 722년 앗수르에의해 멸망당하고 맙니다.

남유다는 이세벨의 딸 아달랴로 인해 여호와 숭배에서 바알 숭배로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그동안 이스라엘과 유다는 여호와 다른 이방신들을 동시에 섬겼습니다. 그런데 이세벨이 아합과 결혼하여 왕비가 된 이후 북이스라엘에서는 여호와를 완전히 추방해 버렸고, 오직 바알만을 섬기는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남유다는 북이스라엘만큼은 아니었지만 아달랴로 인해 잠시동안 바알을 숭배하는 나라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다를 사랑하셔서 여호와를 섬기는 왕들이 다시 일어나도록 하셨습니다. 

아달랴가 아들 아하시야가 죽자 섭정을 하면서 왕자들을 모두 죽입니다. 그러나 제사장 여호야다는 요아스를 숨겨 성전에서 키우게 됩니다. 그로인해 다시 아댤랴를 제거하고 다윗 왕가를 세웁니다. 이후에 히스기야와 요시야 같은 왕들을 통해서 절망 속에서 부흥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께 멸망합니다. <분열왕국2>에서는 앗수르에의해 멸망당하는 기원전 722년까지를 다룹니다. 이때 남유다의 왕은 히스기야였고,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합니다.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의 사역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잠깐 동안 신적 모습으로 변화하실 때 구약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와 더불어 대화합니다.(마 17:3) 오므리 왕조의 몰락은 엘리사의 생애와 같이 합니다. 아합이 죽고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북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왕상 22:51) 그는 왕이 되어 고작 2년 동안만 통치합니다. 그는 아합을 훨씬 능가하는 악한 왕이었고, ‘여로보암의 길’(왕상 22:52)로 행했습니다. 그가 사마리아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이 들어 에그론 신 바알세붑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갔기 때문에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하시야는 군대를 보내 엘리야를 잡아오게 합니다. 엘리야가 그들을 보고 기도하여 하늘에서 불이 내려 그들이 죽습니다.(왕하 1:10) 두 번째도 역시 동일했습니다. 세 번째 온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들은 엘리야에게 구릎을 꿇어 간구합니다. 엘리야는 다시 그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증언합니다. 결국 아하시야는 죽습니다. 아하시야에게 아들이 없어 아하시야의 동생 여호람(요람)이 대신 왕이 됩니다. 이것이 엘리야의 마지막 사역이었습니다.

엘리야의 승천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회리 바람으로 하늘로 데려 가십니다. 엘리야는 하늘로 오르기 전에 엘리사의 한참을 동행합니다. 벧엘로(왕하 2:2), 여리고로(왕하 2:4), 요단으로(왕하 2:6) 함께 다닙니다. 요단에서 엘리야는 겉으로 물을 치니 물이 갈라지고 두 사람은 마른 땅으로 요단을 건너갑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와 함께 강을 건넌 것을 상징합니다. 가나안은 천국을 상징하기에 요단을 죽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요단을 건넌 후 두 사람이 대화할 때 불수레와 불말들이 ㄷ 사람을 갈라 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갑니다.(왕하 2:11)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가지 엘리사는 엘리사가 한 것처럼 자신도 엘리야가 남기고 간 옷으로 요단을 치니 요단이 갈라지고 엘리사는 요단을 건너갑니다.

물의 근원을 고치고 저주함

엘리사의 사역은 엘리야에 비해 기이합니다. 마치 신화의 한 장면을 접하는 것 같습니다. 엘리사의 기적은 어떤 마을에 물이 나빠 물의 근원을 찾아가 소금을 뿌려 고치는 것입니다. 벧엘로 올라가면서 작은 아이들이 나와 엘리사를 대머리라고 놀릴 때 그들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합니다. 그러자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 아이들 중의 사십 명을 찢어 죽입니다. 엘리사는 갈멜 산으로 갔다고 사마리아로 돌아갑니다.(왕하 2:19-25)

모압과의 전쟁, 거문고를 타며 계시하다

여호람이 형 아하시야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여호람이 다스릴 때 여호사밧과 연합하여 모압 왕 메사를 치러갑니다. 이때도 여호사밧은 아합에게 했던 것처럼 선지자에게 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때 엘리사를 부릅니다. 엘리사는 거문고를 타면서 하나님께 받은 계시를 들려줍니다. 전쟁이 일어나 엘리사의 말대로 승리합니다.(왕하 3)

선지자의 아내와 기름

선지자 중의 한 아내가 엘리사를 찾아와 빚 때문에 자녀들이 팔려간다고 말하며 도움을 구합니다. 엘리사는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라고 말합니다. 여인은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없다고 하자 이웃들에게 그릇을 빌려 빈 그릇에 채우라 말합니다. 그릇을 빌려 문을 닫고 기름을 부으니 빈 그릇이 없어질 때까지 기름이 나와 그것을 팔아 빚을 갚습니다.(왕하 4:1-7)

엘리사와 수넴 여인

엘리사가 수넴을 지날 때 어떤 여인이 엘리사를 붙잡아 음식을 대접하고 방을 빌려 줍니다. 어느 날 엘리사는 그 여인을 불러 소원을 말해보라 하지만 거절합니다. 게하시가 여인에게 아들이 없다 말하고 남편은 늙었다고 알려줍니다. 그렇게 여인은 기적으로 아들을 낳고 즐거워합니다. 아이가 자라나 갑자기 죽데 됩니다. 여인은 엘리야가 찾아가 아이가 죽은 사실을 말합니다. 엘리사는 여인을 따라가 아이가 죽은 것을 보고 자신의 몸을 그 아이 몸에 자신의 몸을 대니 아이가 살아납니다.(왕하 4:8-37)

그 외의 사역들

엘리사의 사역들은 엘리야에 비해 상당히 길고 다양합니다. 선지생도들이 들호박국을 먹고 죽을 뻔할 때 살려주고(왕하 4:38-41), 한 사람이 바친 보리떡과 채소로 백 명에게 주어 먹게한 것은 오병이어 기적을 닮았습니다.(왕하 4:42-44) 엘리사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나아만 장군을 낫게 한 사건입니다.(왕하 5) 물에 빠진 도끼를 나무를 던저 건져 올리고(왕하 6), 아람 군대와의 전쟁에서 예언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왕하 7)

 예후, 오므리 왕조를 무너뜨리다

예후는 엘리야를 통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들었습니다.(왕상 20:16) 엘리사는 그 예언대로 선지자 제자 중 한 명에게 예후에게 기름을 붓고 ‘아합의 집을 치라’(왕하 9:7)라고 말하게 합니다. 예후는 기름부음을 받고 곧바로 일어나 아합의 집을 칩니다. 이스라엘 왕 요람은 아람과의 전투에서 부상을 당해 이스르엘에 있었습니다. 예후를 그를 찾아가 죽이고(왕하 9:24), 문병을 온 유다와 아하시야도 죽임을 당합니다.(왕하 9:27) 곧바로 이스라엘로 가서 아합의 아내 이세벨을 죽입니다. 아합의 아들들도 예후의 손에 모두 죽습니다.(왕하 10) 마지막으로 바알의 제사장들을 불러 모아 모두 죽입니다. 예후를 통해 예언했던 모든 일을 성취됩니다. 예후는 죽고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됩니다.

이세벨의 죽음
이세벨의 죽음
유다의 악녀 아달랴와 요아스

당시 유다 왕이었던 아하시야는 요람을 문병갔가 예후의 손에 죽임을당합니다.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는 이세벨의 딸이었습니다. 그녀는 아하시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왕이 될 만한 모든 왕족들을 찾아 죽입니다.(왕하 11) 이때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숨깁니다. 요아스는 성전에서 육 년 동안 숨어 지냅니다. 일곱째 되던 해 제사장 여호야다가 요시야를 앞세워 왕위를 회복시킵니다. 어린 요시야를 대신해 여호야다가 유다에서 개혁을 단행합니다.(왕하 11:17-21)

요아스는 칠 세에 왕이 되어 40년을 통치합니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사는 날 동안에 야아스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습니다.(대하 24:2) 두 아내를 두었고, 자녀를 낳았습니다. 여호야다와 함께 성전을 보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나이 들어 죽자 여호야다는 돌이켜 방백들의 말을 듣고 우상숭배를 시작합니다.(대하 24:15-19)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돌로 쳐 죽입니다.(대하 24:21) 이 일로 요시야는 하나님께 버림 받고 부하들의 반역으로 죽고 맙니다. 다윗 성에 장사되었으나 왕들이 묘실에는 장사되지 못한 비운의 왕이 됩니다.(대하 24:25)

북이스라엘의 멸망(B.C. 798-722)

B.C. 798-722까지는 남유다나 북이스라엘에게 위기의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북이스라엘은 반역과 모반의 역사로 점철됩니다. 아래의 표를 통해 왕들의 모습들을 살펴봅시다.

유다의 아마샤와 북이스라엘의 요아스

요아스가 죽자 그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됩니다.(왕하 14:1) 25년 동안 통치합니다 왕이 되자 아버지를 죽인 사람들을 죽였지만 모세의 율법에 따라 그들의 자녀들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에돔과의 전쟁에서 소금 골짜기에서 대승을 거둡니다. 그러나 어리석게 에돔과 전쟁에서 승리하고 북이스라엘과 전쟁을 하려다 패하고 맙니다. 아마샤의 말년는 비참합니다. 전쟁에서 지고, 신하들이 반역하자 라기스로 도망하지만 결국 죽임을 당합니다.(왕하 14:17-20)

여로보암 2세와 그 이후의 왕들

북이스라엘의 왕 요시아는 유다왕 아마사야와의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얼마 후 죽고 맙니다. 요시아가 죽자 그의 아들이 왕이 되어 41년간을 통치합니다. 성경에서는 단 몇 구절로 끝내지만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시기는 그 어느 시기보다 부강했고, 광대한 영토를 되찾은 시기였습니다. 여로보암2세는 초대왕이었던 여로보암의 길을 그대로 따릅니다. 이때 요나 선지자는 영토가 회볼 될 것을 예언합니다.(왕하 14:25) 여로보암의 이후 북이스라엘은 급속하게 패망의 길로 떨어집니다. 여로보암 2세가 죽자 그의 아들 스가랴가 왕이되어 여섯 달 동안만 통치합니다. 살룸이 반역하여 백성들 앞에서 스가랴를 죽이고 대신 왕이 됩니다.(왕하 15:8-12) 스가랴의 죽음은 예후왕조의 끝을 가져옵니다. 4대 동안 이스라엘의 왕위에 있으리라는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살룸은 스가랴를 죽이고 왕이 되었지만 고작 한 달 동안의 왕이었습니다.(왕하 15:13)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반역을 일으켜 살룸을 죽이고 왕이 됩니다.(왕하 15:14) 므나헴은 십 년 동안 왕이 되어 통치합니다.(왕하 15:17) 므나헴이 죽고 그의 아들 브가히야가 왕이 되어 2년간 통치합니다.(왕하 15:22-23) 그가 여로보암의 길에서 떠나지 않자 하나님은 장관으로 있던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반역하게 하여 브가히야를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게 합니다.(왕하 15:25) 베가는 20년 동안 왕으로 있습니다. 

베가 역시 여로보암의 길에서 떠나지 않았고, 결국 엘라의 아들 호세아 반역하여 베가를 죽이고 왕이 됩니다.(왕하 15:30) 호세가 왕이 될 때(기원전 732년)는 앗수르가 급속하게 힘을 되찾아갈 때였습니다. 앗스르 왕 살만에셀이 쳐들어오자 그에게 종이 되고 조공을 바칩니다.(왕하 17:3) 그러나 호세아는 살만에셀을 반역하고 조공을 바치지 않자 그를 옥에 가두고 삼 년 동안 사마리아를 에워싸 멸망시킵니다. 결국 기원전 722년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완전히 멸망 당하고 역사 속에서 사라집니다.

남유다: 웃시야에서 아하스까지

아사랴(웃시야)

  • 왕하 15:1-7, 대하 26장

여로보암2세가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 남유다는 아마샤가 죽고 그의 아들 아사랴(웃시야)가 16세의 나이로 왕이 됩니다.(왕하 15:1-2) 52년이라는 긴 통치기간은 이스라엘 전역사에서 가장 긴 통치 기간입니다. 웃시야는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그다지 중요한 왕은 아니었지만 강력한 왕이었습니다. 강대국의 권력 공백기 속에서 남유다를 강력한 리더십으로 하나로 이끌러 강력한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강력하고 엄청난 리더십을 가진 웃시야를 열왕기 기장은 고작 7절로 정리합니다. 그는 말년에 교만하여 제사장이 드리는 제사를 자신이 집례하여 하나님의 노여움을 받고 나병에 걸립니다. 죽는 날까지 나병 환자가 되어 숨어 지냅니다.(왕하 15:5-7) 

역대기 기자는 좀더 길고 상세하게 웃시야의 행적을 다룹니다.(대하 26) 요시아에게 여호야다가 있었다면 웃시야에게는 스가랴가 있었습니다.(대하 26:5) 그는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를 가까이에 두고 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웃시야는 많은 건축을 했고,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농사를 좋아하여 망대를 세우고, 가축을 기르고, 농부와 포도원 지기를 두었습니다.(대하 26:10) 강력한 군대를 만들었고, 전쟁에 필요한 무기도 다듬고 개발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주변 나라들에게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열왕기의 서술대로 말년에 교만해져 성전에 들어가 향단에 분향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삽니다. 52년이라는 긴 통치 기간이 끝났을 때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를 선지자로 부르십니다.(사 6:1)

요담(Jotham)

  • 왕하 15:32-38, 대하 27:1-9

웃시야가 죽고 아들 요담이 왕이 25세에 왕이 됩니다.(왕하 15:32-33) 16년간 통치합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해 행했으나 산당에서 제사 드립니다. 여호와의 성전 윗문을 건축합니다.(왕하 15:35) 아람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많은 조공을 받습니다.(대하 27:5) 역대기 기자는 요담이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바른 길을 걸었’으므로 점점 강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아하스(Ahaz, B.C. 731-716)

요담의 죽자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스무 살에 유다의 왕이 됩니다.(왕하 16:1) 16년간 통치합니다. 아하스는 다윗과 같지 않아 여호와 보시기에 선하지 않았습니다. 이방 신들을 섬기며 자기의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람와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를 보낸 아하스를 칩니다. 이 때 아하사는 여호와께 도움을 구하지 않고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셋에게 뇌물을 주고 용병을 청합니다. 디그랏 빌레셋은 뇌물을 받고 올라와 아람과 이스라엘을 칩니다. 디그랏 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아람)에 가서 우상 제단을 보고 그것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만들게 합니다. 우리야 제사장에게 명하여 그곳에서 모든 제사를 드리도록 합니다. 

아하스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은 불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왕하 16) 르신과 베가의 연합군이 왔을 때 이사야 선지자는 아하스를 찾아가 여호와께서 함께하실 것을 약속하며 징조를 구하라 합니다.(사 7) 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아하시는 징조를 구하지 않고 앗수르를 의지했습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임마누엘’의 징조로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합니다.(사7:14)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이후 모반과 모만이 이어집니다. 베가가 죽은 후 앗수르는 호세아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고 물러갑니다. 그러나 호세아는 조공 바치는 것이 고통스러워 앗수르 배신합니다. 앗수르는 3년 동안 사마리아를 포위해 결국 기원전 722년 완전히 멸망시킵니다.(왕하 18:9-12) 이것으로 북이스라엘은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고 남유다만이 남아 생존하게 됩니다. 

분열 왕국 시대 3 개요

아하스는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성전 문을 닫고 자신이 다메섹에서 본따 만든 새로운 제단에서 예배 하도록 했습니다. 결국 아하스는 말년에 아람 왕에게 공격을 당하고 많은 무리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대하 28:5) 또한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유다에서 십이만 명을 죽입니다.(대하 28:6) 아하스는 많은 뇌물을 바쳐 앗수르 왕에게 바쳐 아람과 이스라엘을 치게 만드십니다. 결국 아하스는 죽었음에도 왕실 묘실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아하스가 죽고 히스기야 왕이 됩니다. 히스기야는 지금까지 그 어떤 왕보다 경건하고 신실한 왕이었습니다. 많은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의지했고, 여로보암의 길이 아닌 ‘다윗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말년에 죽을 병에 걸려 기도함으로 나음을 입었습니다.

히스기야 이후의 왕들은 멸망의 나락으로 급격히 떨어지는 이유들을 제공했습니다. 므낫세는 우상숭배자였고, 아몬과 역시 악한 왕이었습니다. 아몬을 이어 요시야가 왕이 되어 개혁을 일으켰지만 멸망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요시야의 죽음 이후 유다는 돌이킬 수 없는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호야긴은 무능하고 악한 왕들이었습니다.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도 악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남유다를 바벨론의 손에 넘기십니다.

히스기야에서 요시야까지

히스기야(Hezekiah)와 앗수르

히스기야(Hezekiah)는 아하스를 이어 유다의 왕이 됩니다. 처음 13년은 아하스와 함께한 섭정 시간이었고, 4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통치합니다. 히스기야는 열왕기 기자의 평가로는 그 어떤 왕보다 훌륭한 왕이라는 최고의 평가를 내립니다.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왕하 18:5-6)

도덕적 측면에서도 다윗보다 더 훌륭합니다. 마지막 바벨론 사신들에게 국고의 기물과 보물들을 보여 준 것 외에는 흠이 거의 없습니다.히스기야 4년(섭정 기간)에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이 북이스라엘을 공격해 멸망시킵니다. 그로부터 십년이 지난 히스기야 통치 14년이 되던 해 앗수르의 왕 산헤립(Sennacherib)이 서쪽으로 진군해 옵니다. 먼저 두로를 멸망시키고, 블레셋 지역인 아스글론과 그 주변을 순식간에 정복해 나갑니다. 지레 겁을 먹은 유다의 주변 나라들인 모암, 에돔, 암몬 등은 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에 항복합니다. 이제 마지막 남은 유다를 쳐들어 옵니다. 예루살렘을 남겨두고 주변부를 점령해 나갑니다. 앗수르 왕이 라기스에 있을 때 신하를 보내 조공을 바치게 하고 항복하도록 권고합니다. 히스기야는 두려움에 빠져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국 곳간의 은금을 내어주고, 성전 기둥에 입힌 금까지 벗겨 보냅니다.(왕하 18:13-16)

앗수르 왕은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신하를 보내 예루살렘을 치라고 합니다. 히스기야는 두려움과 슬픔 속에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켜줄 것을 듣게 됩니다.(왕하 19:6-7, 20-34) 그날 밤, 여호와의 사자가 앗수르 진영의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진멸시킵니다.(왕하 19:35) 전쟁에서 패한 산헤립은 앗수르로 돌아가 그의 신 니스록(nisrok)에게 경배할 때 두 아들이 산헤립을 죽이고 도망합니다. 산헤립을 대신해 그의 아들 에살핫돈(Esarhasson)이 앗수르의 왕이 됩니다.

산헤립의 군사를 치는 천사
산헤립의 군사를 치는 천사

히스기야의 발병과 기도, 그리고 죽음

왕상 20:1-21, 대하 32:24-26, 사 38:1-8, 21-22히스기야가 언제 병이 들었는지 시기적으로 모호합니다. 아마도 앗수르와의 전쟁 중이거나 직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 선지자가 찾아와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왕하 20:1)는 여호와의 말씀을 전해 줍니다. 히스기야는 뜻 밖의 행동을 취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거라면 받아 들이거나 슬퍼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병이 낫기를 기도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시고 히스기야의 수명을 15년 동안 더 늘려 줍니다.

히스기야는 증표를 구하고 이사야는 해시계의 그림자가 십도 물러가게 합니다.(왕하 20:11) 그 때, 바벨론의 왕 브로닥 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고 함을 듣고 편지와 사자와 예물을 들고 갑니다. 들뜬 히스기야는 왕국과 나라와 보물들을 보여줍니다. 이사야는 히스기야를 찾아가 왕궁의 모든 것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후손들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라고 예언합니다.(왕하 20:16-18) 히스기야는 십오 년을 채우고 조상들에게 돌아가고 그의 아들 므낫세가 왕이 됩니다.

므낫세(Manasseh, B.C. 685)

므낫세는 12세에 왕이 됩니다. 므낫세는 믿음의 왕이었던 아버지 히스기야를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합니다. 히스기야가 버린 산당들을 다시 세우고, 북이스라엘 아합 왕처럼 바알을 섬기며 아세라 상을 섬겼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늘의 일월성신을 경배하기에 이릅니다. 여호와의 성전에 단을 쌓고 일월성신을 섬겼습니다. 므낫세의 악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죄가 없는 사람들을 많이 죽였습니다. 

아몬(Amon, )

아몬은 22세에 왕이 되어 고작 2년간 통치합니다. 아몬은 아버지를 닮아서 므낫세처럼 온갖 악을 행합니다. 신들이 반역하여 궁에서 그를 죽입니다. 백성들이 반역자들을 죽이고 그의 아들 요시야를 왕으로 세웁니다.(왕하 21:19-26) 

요시야(Josiah)

요시야는 선한 왕이었습니다. 8세에 왕이 되어 30년 간 통치합니다. 왕이 된 열여덟 해에 서기관 사반을 성전에 보내 성전을 수리하도록 합니다. 대제자사장 힐기야가 사반에게 성전에서 율법을 책을 발견하여 건네 줍니다. 사반은 요시야에게 발견한 율법책을 읽어 줍니다. 왕이 율법책에 기록된 것을 듣고 옷을 찢고 회개합니다.(왕하 22:8-13) 요시야는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행하지 않아 하나님의 저주가 임했다는 것을 알고 백성들을 성전에 모으고 율법을 전하게 합니다.(왕하 23:1-3)

율법을 낭독을 마친 요시야는 온 백성들과 언약하고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개혁을 단행합니다. 바알과 아세라 상, 일월성신을 위해 만든 모든 그릇들을 기드론 밭에서 불사르고 산당들을 폐합니다. 여호와의 성전 안에 있던 남창의 집을 허물고 우상의 제사장들이 있는 산당을 헙니다. 흰놈의 골짜기에 있던 도벳을 더럽게 하여 몰렉 우상을 숭배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유다의 여러 왕들이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을 제하고, 태양수레를 불사릅니다.(왕하 23:11) 요시야의 개혁은 유다 안에서 머물지 않고 멸망한 이스라엘 땅까지 확대됩니다. 

벧엘로 올라가 여로보암이 만들어 이스라엘을 멸망하게 한 제단과 산당을 허물고 아세라 목상을 빻아 불사릅니다. 산에 있던 무덤에서 해골을 가져와 제단을 더럽게 합니다. 이것은 전에 한 선지자가 벧엘에 송아지 우상을 만든 여로보암에게 내린 저주의 예언이었습니다.(왕상 13:2) 예루살렘에 돌아와 유월절을 지킵니다. 요시야가 이러한 개혁을 온전하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책 때문이었습니다. 율법책 안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계명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를 요시야의 힘으로 막아내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동안 유다가 지은 죄가 너무 많았습니다.

요시야의 말년은 어처구니없이 찾아옵니다. 애굽의 바로 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기 위해 유브라데 강으로 가는 길에 므깃도에서 요시야와 만납니다.(왕상 23:29) 바로 느고는 요시야에게 사신을 보내 지금은 앗수르를 치러 가니 나와 상관없으니 비켜 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요시야가 말을 듣지 않고 전쟁을 치릅니다. 요시야는 결국 활에 맞아 중상을 입습니다. 전쟁을 그치고 예루살렘에 오지만 결국 숨을 거둡고 맙니다.(대하 35:20-24) 선지자 예레미야는 애가를 지어 슬퍼합니다.

여호아하스(Jehoahaz)

  • 왕하 36:1-4

요시야가 죽자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예루살렘의 왕이 됩니다. 그러나 요시야 이후의 왕들은 어리석고 무능했습니다. 왕이 된 지 석 달 만에 바로 느고가 예루살렘에 와 그를 폐하고 그의 형제 엘리아김을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여호야김이라 부릅니다. 여호아하스는 애굽으로 데려갑니다.

여호야김(Jehoiakim)

  • 왕하 36:5-8

여호야김은 25세에 왕이 됩니다. 그의 왕이 된 날짜는 고작 ‘십일 년’입니다. 여호아하스의 석 달에 비하면 많은 편입니다. 여호야김 역시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왕이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갑니다. 여호야김을 대신하여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됩니다.

여호야긴(Jehoiachin)
  • 왕하 36:9-10

고작 8세의 나이로 왕이 된 야호야긴은 실제로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석달 열흘 동안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그가 어떤 일을 했는지 모르지만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고 말합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사람을 보내 보내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잡아 가고 여호와 전의 귀한 그릇들도 함께 가져갑니다.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의 숙부인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웁니다.

시드기야(Zedekiah)
  • 왕하 36: 11-21, 렘 52:1-34

시드기야는 21세에 왕이 됩니다. 십일 년 동안 통치합니다. 하지만 그 역시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왕이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계속하여 충고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시드기야를 마지막으로 남유다는 멸망하게 됩니다. 바벨론 느부갓네살은 시드기야 9년에 예루살렘에 쳐들어와 시드기야 11년이 되던 해까지 포위합니다. 기근이 일어나고 시드기야는 군사들과 함께 도망갑니다. 바벨론 군사들에게 잡히고 하맛 땅 리블라에 있던 느부갓네살 왕에게 끌려 갑니다. 그곳에서 시드기야는 심문을 당하고 그의 아들들을 죽임을 당합니다.

성전을 허물고, 성벽을 부수며, 왕과 방백들이 소유한 모든 보물을 바벨론으로 가져갑니다. 성전은 불태워져 완전히 사라집니다. 그렇게 칠십 년 동안 유다는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고레스의 칙령이 내릴 때까지 바벨론에 머물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기원전 586년에 남유다도 바벨론에 의해 멸망 당합니다. 이제 다시는 이스라엘은 회복하지 못합니다. 중간기에 마카비 혁명을 통해 임시적으로 회복하기는 하지만 다윗 왕족의 왕도 아니며, 사독계열의 제사장도 아니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회복은 아니었습니다. 이제 포로기와 재건기를 통해 구약의 마지막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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