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아빠라 부를 수 있는가?
아바, 아빠의 성경 구절
한 때 하나님을 ‘아빠’로 불러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게 설교하는 목사들이 많다. 그거는 갈라디아서 4장 6절이다. 개역한글판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
- 갈 4:6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개역개정으로 넘어오면서 ‘아바’를 아예 ‘아빠’로 번역해 버렸다.
- 갈 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정말 성경에 ‘아빠’라는 단어가 있을까? 필자는 NA28을 참조했다.
- Ὅτι δέ ἐστε υἱοί, ἐξαπέστειλεν ὁ θεὸς τὸ πνεῦμα τοῦ υἱοῦ αὐτοῦ εἰς τὰς καρδίας ἡμῶν κρᾶζον· αββα ὁ πατήρ.1
여기서 ‘아빠 아버지’로 번역된 단어는 ‘αββα ὁ πατήρ’이다. 헬라어 그냥 ‘아바(αββα)’이다. 그래서 개역한글에서는 원문 그대로 ‘아바’로 번역했고, 개정개역판은 의역을 통해 ‘아빠’로 번역한 것이다. 그렇다면 αββα의 정체는 뭘까?
Ἀββά
Ἀββά는 신약에서 세 번 사용된다. 막 14:36, 롬 8:15, 갈 4:6이다. 갈라디아서는 제외하고 앞의 두 구절을 보자.
막14:36
[개역한글]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개역개정]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롬 8:15
[개역한글]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개역개정]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아바(αββα)는 정말 아빠일까?
여기서 정말 문제는 아바(αββα)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아빠’라는 단어가 맞느냐는 것이다. 일단 아빠는 아이가 아버지를 친근하게 부르는 단어이다. 하지만 커서도 아빠라 부르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보통 딸들은 커서도 아빠라 부르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또한 아빠라는 단어는 현대에 들어와서야 어느 정도 쓰이는 말이지 일반적인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단어이다. 일종의 용납의 의미지 공식적인 호칭이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가 유교적 문화라 그랬고 말한다면 성경 안에서는 어떠했을까?
아바를 아빠로 번역한 것은 일단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냥 헬라어를 보면 ‘아버지 인 아바(αββα ὁ πατήρ)’이다. 그러니까 파르테 즉 아버지는 앞의 아바를 설명하기 위한 보조적 역할을 한다. 풀어서 쓰면 이렇다.
로마인들이 사용하는 아바는 우리(히브리)가 ‘아버지(ὁ πατήρ)가 부르는 사람을 말합니다.
라는 뜻이 된다. 그러니까 아예 처음부터 아바는 아빠가 아니라 로마인들이 사용하는 아바를 번역한 것이다. 문제는 로마 사회에서 아바가 우리가 쓰는 아빠인가라는 점이다.
랍비 문헌이나 당시의 1세기, 또는 중간기 문헌에도 아바라는 표현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헌 속에서 ‘아바’는 아이들이 옹알거리는 침밀감의 표시로 사용되는 ‘아빠’가 아니다. 보호자로서의 아버지이며, 결속력을 가지는 아바인 것이다. 측 과도한 친밀감을 드러내는 아빠가 아니라 보호하시고, 함께 하시는 의미로서의 아바인 것이다.
그렇다고 아바가 아빠의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다.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 부르는 격이 없는 친밀감을 드러는 ‘아빠’는 아닌 것이다. 자녀들을 사형까지도 시킬 수 있는 법적 권한을 가진 가부장적 시대에 아버지를 ‘아빠’로 부르는 것은 엄격히 금지된 것이다. 즉 우리나라의 아빠와 성경 속의 ‘아바’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그렇다고 그 안의 친밀감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격이 있으나 예의를 갖추고 아버지를 다르게 부르는 이름이지, ‘아빠’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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