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9장 묵상

창세기 9장 개요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린 노아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언약을 맺으십니다. 먼저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주시고, 육고기를 먹도록 허락합니다. 무지개를 두어 물로 심판하지 않을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땅에 정착한 노아는 포도나무를 심고 포도주를 마시고 옷을 벗는 추태를 행합니다. 함이 노아의 벗은 모습을 보고 형제들에게 고자질하며 놀리지만 셈과 야벳을 아버지의 수치를 보지 않고 덮어 줍니다. 노아는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하고, 950세에 생을 마감합니다.

창세기 9장 구조

1-7절 다시 언약을 맺는 하나님
8-17절 심판과 무지개
18-29절 술취한 노아와 죽음

창세기 9장 묵상

창세기 9장은 노아 내러티브 안에 들어가 있지만 이전의 장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강합니다. 하지만 아라랏산에서 내려온 노아의 가족은 포도주 농사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노아는 포도주를 마심으로 부끄러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함의 태도도 잘못햇지만 노아의 행동 역시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노아의 이러한 모습을 통해 홍수 이전의 사람들의 죄된 습성을 보게 됩니다. 아무리 노아가 믿음의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그도 죄인이고, 악한 습성과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1-7절 다시 언약을 맺는 하나님

하나님이 복을 주시며

이 구절은 창세기 1장의 내용을 그대로 반복합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주어진 축복을 노아에게 다시함으로 노아가 아담과 같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어떤 의미에서 노아는 새로운 아담입니다. 그에게서 다시 인류가 번성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제2의 아담처럼 노아에게 아담에게 주었던 복을 다시 반복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다른 피조물에 대한 통치까지 거의 비슷하게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죄악된 인류를 심판했습니다. 사람들의 본성이 악하다는 것을 하나님압니다. 그럼에도 남겨진 노아의 가족들에게 아담에게 한 것처럼 새로운 시작의 기회를 허락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은혜롭고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다만 인간들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악으로 사용합니다.

산 동물은 너희 먹을 것이

성경에서 가장 처음을 육신을 허락하는 구절입니다. 하지만 이 구절이 그 전부터 육식을 먹었는지 먹지 않았는지 알게 하지는 못합니다. 적지 않은 학자들은 이 구절 이전에서 육식이 있었을 것이라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좀더 다른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피다. 피에 생명이 있으며, 피째 먹지 말 것을 경고하십니다.(4절) 또한 피흘림에 대해 피는 피로 갚겠다 하십니다. 즉 피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6절)

8-17절 심판과 무지개

내 언약을


하나님의 언약은 노아와 후손들 그리고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과 땅의 모든 짐승을 포함합니다.(10절) 하나님의 언약의 핵심은 모든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징계는 악을 잠시 멈출 수는 있으나 없게 하지는 못합니다. 본성이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양이를 잠깐 우리에 가둘 수는 있으나 생선을 좋아하는 습성을 바꾸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다시는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 하신 것 입니다. 결국 진정한 승리는 새로운 마음의 변화, 본성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인간은 악하기 때문에, 죄의 습성이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용서가 필요하고 긍휼히 여김을 받아야 합니다. 선을 행하고 싶어도 행하지 못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해 끊임없이 죄와 싸워야 하고, 죄를 억제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의 이야기를 들어 봅시다.

롬 7:14-20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무지개

무지개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케쉐트(קֶשֶׁת)로 직역하면 활입니다. 무지개는 활처럼 초승달처럼 휘어 있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단어가 삼상 2:4에서는 활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단어에 유난을 떨지만 그리 중요한 단어가 아닙니다. 휘어진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노아와 무지개

무지개는 반드시 비가 온 후에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평범한 날에도 무지개는 뜰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노아의 가족들에게 주시는 무지개는 홍수로 인해 모든 인간들이 죽고, 홀로 남겨진 노아의 가족들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표시합니다. 홍수로 인간을 멸하지 않겠다는 것은 이전처럼 단순한 심판으로 인해 세상을 정죄하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이기도 합니다. 일부의 학자들은 이제 물이 아닌 불로 세상을 심판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한 주해가 여기서 옳은지는 확실치 않으나 베드로는 분명 마지막 때에 불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 언급합니다.

  • 베드로후서 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8-29절 술취한 노아와 죽음

술에 취한 노아


9장의 마지막 단락은 노아의 실수와 죽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포도원을 가꿉니다. 어느 날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 옷을 벗고 눕습니다. 노아가 갑자기 왜 이런 행위를 했을까요? 노아는 포도주를 마시고 자신의 통제할 수 없을 정도가 되고 말았습니다. 술 취함은 잘못된 길로 빠지는 지름길입니다.

잠언 23:21 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 자기를 즐겨 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누가복음 21: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그런데 함이 아버지의 벗은 모습을 보고 두 형제에게 고자질 합니다. 셈과 야벳은 이야기를 듣고 뒷걸음쳐 가서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 줍니다. 수치를 가려준 것입니다. 수치를 가리는 것은 인간의 타락 이후 생겨난 지식입니다. 누군가는 타인의 잘못을 비고 비방하는 자들이 있고, 누군가는 남의 허물을 덮어주는 자가 있습니다.

잠언 17:9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18절에서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로 소개되고, 함이 저주를 받지 않고 함의 아들 가나안이 저주를 받습니다. 가나안은 이스라엘이 들어가야 할 땅의 이름의 기원이 되는 이름입니다. 그들은 저주 받은 백성임을 말해주려는 것입니다.

노아가 죽었더라


노아는 950세에 죽습니다. 정말 오래 살았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 노아도 결국은 죽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이 생은 본디 짧고 빠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가장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집중하고 가치 있는 일에 투자해야 합니다.

이것으로 5장에서 시작된 아담의 후손 족보가 끝이 납니다. 노아의 장을 가장 세밀하고 세세하게 그림으로 아담의 후손들의 걸어온 길을 조명합니다. 이것으로 앞으로 전개될 이스라엘의 삶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인 생육과 번성이 악으로 변질될 수 있으며,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할 것입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그러한 가운데 자신을 찾는 사람들을 찾으시고 그들을 통해 세상을 변화 시키는 스토리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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