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서 강해 2장

요나 2장

요나 2장은 요나의 기도를 소개합니다. 8절의 짧은 기도문 안에는 요나의 회개와 존재의 각성을 통한 하나님의 이해가 들어가 있습니다. 기도의 마지막 부분에서 요나는 ‘구원은 여호와께 속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자신이 당한 어려움에 대한 깊은 자각과 하나님께서 죽어 마땅한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요나서 2장 구조

  • 1:17-2:1 기도하는 요나
  • 2-9절 요나의 기도
  • 10절 다시 육지로

2장의 핵심은 요나의 기도 내용입니다. 요나의 기도에는 하나님의 대한 각성이 담겨 있습니다. 선지자인 요나가 하나님을 모를 리 없습니다. 하지만 요나는 하나님의 뜻을 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요나는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이 죽지 않고 살아가고 있음을 알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붙들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것이 요나의 각성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붙들려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소명의 시작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각성으로 요나가 완전히 변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후에 펼쳐지는 요나의 행동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지 못하는 부분이 여전히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완전하지만 순종의 길로 나아가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요나 2장 강해

1절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하는 요나

요나가 – 기도하여

1절은 1:17과 이어져 있습니다. 삼일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던 요나가 드디어 입을 열어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기도의 시작은 생명의 자각에서 일어납니다. 요나서 전체에서 그려지는 요나는 어떤 면에서 유약하지만 간사한 존재입니다. 3-4장에서 또 그의 성격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자전적 관점에서 요나서 읽는다면 요나의 이러한 약점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은 그만큼 자신과 이스라엘을 동일시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멀지 않았음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1절은 히브리어 순서대로 나열해 보겠습니다.

  • 기도했다 요나는 께 여호와 그의 하나님 뱃속에서 물고기

히브리어는 한국어와 다르게 대부분 동사를 먼저 앞세웁니다. 이러한 특징을 항상 이동하는 유목민이란 특징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는데, 오해의 소지가 큽니다. 히브리인보다 더 많은 이동을 하는 몽골인의 경우는 주어+목적+서술어 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는 오히려 가까운 지역인 헬라어와 매우 비슷한 순서를 갖고 있습니다.

이유야 어떻든 히브리어에서 동사 앞으로 나와 있다면, 그 동사가 문장 전체를 끌고 가는 역할을 한다는 점입니다. 즉 1장의 중심은 ‘기도’에 있습니다. 기도를 풀어내는 중요한 환경은 ‘물고기 뱃속’입니다.

물고기 뱃속이란 의미는 죽음의 장소에서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도무지 살 수 없는 곳에서 요나는 깨어났고, 자신의 물고기 뱃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에 놀란 입니다. 여기서부터 요나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깊은 자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2-6절 고난의 기도

내가 받는 고난으로

기도의 시작은 ‘고난'(2절)이었습니다. 요나의 교만과 자만을 깨뜨리는 것은 죽음의 문턱까지 내려간 고통 때문이었습니다.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로 인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은 참으로 기어한 역설입니다. 누군가는 고난으로 위장한 축복이란 표현을 씁니다.

들으셨나이다

요나는 기도를 시작하면서 이미 하나님께서 들으셨다고 확신합니다. 2절에서 이미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음성을 들으’셨다고 말합니다. 요나의 확신은 이미 죽어야할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 기반합니다. 소화되어 없어져야 할 자신의 몸이 살이 있다면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안 것이죠. 그는 이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스올(Sheol, שְׁאוֹל)의 뱃속

스올은 중립적인 언어입니다. 어떤 목사는 스올을 지옥으로 곧장 해석하는데 매우 위험하고 잘못된 표현입니다. 스올은 지옥이 아닙니다. 스올은 죽음의 장소, 무덤, 땅속 등을 말하며 인간이 살아서 갈 수 없는 죽음의 공간이란 뜻입니다. 부정적으로는 사용될 때는 악인들이 가는 장소이지만, 슬픔과 고통 등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 창 37:35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다윗이 죽으면서 솔로몬에게 유언하는 장면에서 ‘평안히 스올로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는 부정적 의미가 아니라 죽음으로 인해 쉼과 안식을 얻는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 왕상 2:6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의 백발이 평안히 스올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스올에 대한 더 깊은 이야기는 [성경토픽-스올(שְׁאוֹל)]에서 다룹니다.

주께서 – 던지셨으므로

요나는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 지를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심을 그는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왜 그렇게 당해야만 했는지도 압니다. 요나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고난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여 주신 고난인 것도 깨닫습니다. 6절 후반부에서도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 던’졌다고 표현합니다.

7-10절 내 영혼이 피곤할 때

내 영혼이 피곤 할때

7절은 묘한 표현입니다. ‘피곤하다’는 ‘뒤덮이다’ ‘약하다’ ‘탈진하다’ 뜻의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창 30:42에서는 ‘약한’으로 번역됩니다. 요나는 살아갈 소망이 사라지고 죽음의 문턱에서 더 이상 버틸 힘없을 때 하나님께 기도했음을 말합니다. 놀랍게 바로 그때, 요나의 기도는 하나님께 이르렀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응답을 ‘주의 성전에 미쳤’다고 표현합니다. 심연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떠난 배역자인 요나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신 것입니다. 당시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요 거룩한 장소입니다.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멀리 떠날 때 성전을 향해 기도하는 기도하는 습관을 갖게 됩니다. 다니엘도 포로 끌려갔을 때 성전이 있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거짓되고 헛된 것을

8절은 대체로 고국 즉 북 이스라엘을 향한 우상 숭배자들을 향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그곳이 안전하다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떠난 그들의 삶이 가장 위험한 곳입니다. ‘거짓 되고 헛된 것’은 우상숭배를 말합니다. 우상 숭배자들은 ‘자기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버린 자들의 말로는 멸망입니다. 요나 자신이 하나님께서 소명의 은혜를 망각하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다시스로 도망쳤습니다. 결국 그는 심판 아래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아직 소명이 끝나지 않았기에 그를 다시 부르십니다. 소명이 끝나지 않으면 그는 죽지 않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불순종하며 소명을 저버리는 자들은 삶의 목적과 의미를 상실했기 때문에 멸망 당할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소명자입니다. 하나님 예배하기를 멈추면 그는 도망가는 요나와 같습니다. 불순종이 우상숭배의 자리입니다.

감사의 제사

8절과 9절은 대칭적으로 8절이 우상숭배자들의 이야기라면 9절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요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마치 시편 1편처럼 악인과 의인의 대칭적 구조를 보여줍니다.

요나는 자신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 감사의 제사를 드리겠다 말합니다. 감사는 후반부에 나오는 모든 구원이 여호와께 있음을 알 때 시작됩니다. 우리는 종종 무너집니다. 현실은 답답하고 모호하고, 막막하지만 하나님이 보시는 세계는 전혀 다릅니다. 시편 73편에서 시인은 악인들로 인해 고통을 받지만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일임을 알고 놀라운 통찰력을 얻고 감사하게 됩니다.

  • 시 73:16-19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시고, 모든 것을 풀어가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 때 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요나는 감사의 기원을 이렇게 풀어냅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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