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9장
에발산과 그리심산에서 언약을 선포하고 갱신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곧 다른 잘못을 범하고 맙니다. 가나안의 모든 족속을 쳐서 멸하라 했지만 기브온 민족이 멀리서 왔다고 속이고 언약을 맺고 맙니다. 그들은 어떻게 이스라엘과 여호수아를 속였을 까요?
여호수아 9장 구조
- 1-2절 싸우려는 가나인 주민
- 3-15절 기브온 거민의 속임수
- 16-21절 기브온 거민을 위해 싸움
- 22-27절 기브온 거민의 운명
1-2절 싸우려는 가나인 주민
저는 늘 여호수아를 보면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되어 가는 과정을 보면 가나안은 이스라엘에게 멸망당할 것이 뻔한데도 왜 그들은 도망가지 않았을까요? 2절을 보시면 가나안 거민들이 ‘모여서 일심으로’ 싸우려 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정말 두려운 것입니다. 마땅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수도 있지만 신기하게도 그들은 타협하거나 도망가지 않고 싸워서 죽음을 자초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가나안 거민들의 멸망은 여호수아가 싸운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멸망의 길을 선택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마치 불나방이 백열등에 계속 달려가 죽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가나인 주민들을 멸망하시는 하나님의 거대한 그림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 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혹여나 이러지 않은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3-15절 기브온 거민의 속임수
기브온 주민들이
모두가 자멸의 길을 걸을 때 놀랍게 기브온 주민들은 다른 행보를 합니다. 그들은 꾀를 내어 이스라엘을 속여 그들과 동맹을 맺기로 합니다. 어쩌면 이 일은 주변 거민들에게 미움을 살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또한 잘못하여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대로 죽기보다 살 가능성이 있는 것에 모험을 하기로 합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좋지 않지만 기브온 주민들에게는 최선이었습니다.
기브온 민족들이 비겁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들었습니다. 마치 라합이 광야에서 행한 것을 들은 것처럼 기브온 민족들도 이스라엘의 일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잘못하면 죽음을 면할 수 없겠다는 판단을 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았습니다.
꾀를 내어
그들은 생각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꾀를 내어 일을 꾸밉니다. 멀리서 온 사람들처럼 행세를 하고 이스라엘을 찾아가 동맹을 제안한 것입니다. 그들이 얼마나의 준비 시간을 가졌는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리 길지 않은 듯 보이니다. 그럼에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장로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지혜를 욕망을 구하는 데 사용하지 않고 생존을 위한 곳에 사용하였습니다. 이것은 흡사 불의한 청지기와 같습니다. 그는 쫓겨날 것을 대비해 곰곰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회계 장부를 조작합니다. 주인이 보고 칭찬했다는 것을 보면 그가 한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장부조작은 아닌 듯 보입니다. 하여튼 그는 자신이 살 궁리를 했고, 실천했습니다. 이것이 지혜 아닐까요?
그들이 대답하되
기브온 거민들은 여호수아는 찾아가 인사한 다음 자신들을 소개합니다. 모두 거짓말이죠. 그런데 그들의 말을 유심히 들으며 라합의 말과 다르지 않음을 봅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행한 일'(9절)을 들었고, 광야를 지나면서 아모리의 두 왕 헤스본 왕 시혼과 아스다롯에 있는 바산 왕 옥에게 행한 것도 들었습니다.(10절) 이들은 당시 무시무시한 왕들이고 포악한 왕이었고, 강력한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이스라엘로 물리치게 하셨습니다. 기브온 민족은 그냥 겁이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여호와께 묻지 않고
실패는 우연이 아닙니다. 기이하게 여호수아는 전혀 의심하지 않고 그들과 조약을 맺고 맙니다. 여호수아 기자는 ‘어떻게 할지 여호와께 묻지 않고'(14절) 그들과 조약을 맺었다고 말합니다. 기브온 거민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요, 이스라엘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우리의 경험이나 지식이 유익한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완전한 지혜를 아닙니다. 너무나 당연하기에 그렇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결국 여호수아와 장로들은 ‘그들을 살리리라'(15절)는 조약을 맺고 맙니다.
16-21절 기브온 거민을 위해 싸움
사흘이 지나서야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귀를 막은 걸까요? 사흘이 지나서야 그들이 근방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행군 사흘 째(17절)에 알게 된 것을 볼 때 직접 그들과 전쟁하기 위해 찾아간 곳에서 그들이 나와 이스라엘을 맞이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서야 여호수아와 장로들은 자신들이 속은 것을 안 것이죠. 기도하지 않은 실수가 엄청난 일이 되어 다가옵니다.
여호와로 맹세하였은즉
이스라엘의 맹세는 여호와의 이름을 걸고 합니다. 비록 잘못된 맹세라 해도 그들을 공격할 수 없습니다. 만약 이 맹세를 어기면 여호와의 이름에 먹칠을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기브온 사람들은 나무를 패며 굴을 긷는 종이 되어 살아가게 합니다.(21절)
22-27절 기브온 거민의 운명
22절 우리를 속였으냐
여호수아는 그들의 정체를 알고 나서 그들을 불러 심문합니다. 우리는 종종 뜻하지 않는 속임수에 넘어가기도 합니다. 매사에 주의를 해야 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넘어진다면 이처럼 슬픈 일은 없을 겁니다.
우리 눈으로 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보이지 않는 속임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므로 육신적인 눈이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육신적인 눈을 너머 그들의 속임수를 읽지 못했습니다.
23절 저주는 받나니
기브온 민족들은 저주를 받아 자유민이 아닌 종으로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엄밀하게 저주가 아닙니다. 축복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한 것보다 주의 성전에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큰 복이기 때문입니다.
- 시 84: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하나님께 붙들리는 삶이야 말로 진정한 복이며 행복입니다. 세상의 성공보다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시다.
24절 분명히 들리므로
기브온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대한 계획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을 멸하라는 명령을 들었다고 말합니다.(24절) 그 일로 그들은 두려웠고 방법을 찾은 것입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브온 주민들을 사랑하시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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