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헌금, 구제, 연보

성경 속의 헌금

현대 교회처럼 성경 시대에도 헌금을 했을까요? 우리가 하는 헌금은 어디서 왔을까요?

헌금과 연보의 차이

제가 보기에 이 부분은 한국교회의 타락의 근본적이 이유이자 왜곡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헌금이란 단어는 사용하지 않고 연보라는 단어를 사옹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부터 어느순간 연보라는 단어는 점점 줄어들고 ‘헌금’이란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연보(捐補)는 한자어로 버릴 연捐, 도울 보補를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남을 돕기 위한 모금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현대의 교인들이 보기에 이상하게 느껴질 것이니다. 헌금(獻金)은 바칠 헌獻과 쇠金을 사용합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돈’이란 뜻입니다. 이렇게 보면 연보보다는 헌금이란 단어가 교회적으로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 겁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전혀 성경적이지 않기 때문에 현대교회가 심각한 신학적 퇴보 현상이 일어 났다는 증거입니다.

신약에서는 헌금이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연보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즉 초대교회로부터 교회 안에서는 헌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아무런 근거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연보가 왜 헌금이 된 걸까요? 그리고 헌금이 더 성경적이지 않나요?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헌금(獻金·offering)의 기원

먼저 헌금에 대해 살펴봅니다. 헌금은 돈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이 아닌 구약의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죄를 사함 받았기 때문에 예배를 드리지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헌금의 기원을 찾는 이들이 헌금이 ‘고르반’에서 왔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고르반은 신약 성경에 기록된 것이지 신약적 예배가 아닙니다. 마치 세례요한이 예수님과 친척이고 직접 세례를 주기까지 했지만 구약 사람인 것처럼 고르반은 신약적 예배의 개념이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상윤 교수는 그럼에도 신약에서 사용된 용례를 소개하면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은 연보라는 말보다는 헌금이라는 말로 지칭하게 옳다’라고 말합니다.[국민일보, 교회 용어 바로알기 헌금 / 연보]

헌금은 합당한가?

문제는 이러한 주장이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즉 성경에서 사용되었다 하여 그것이 옳은 것이 아니죠. 그리고 예물이란 단어가 신약의 예배 안에서 사용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만약 이런 식의 주장이라면 아브라함이나 다윗처럼 수많은 아내를 두어도 무방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다시 돌아가보면 예전에는 연보로 번역된 단어가 왜 헌금으로 바뀌었으며, 성경 안에서의 헌금이란 단어는 지금의 교회의 예배 안에서의 헌금이 아니라는 점입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번역상 그렇게 한 것이지 전혀 헌금스럽지 않은 단어들인 것이죠. 자, 그렇다면 헌금은 옳은가? 이건 예배학으로 들아가야할 문제이기도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헌금이란 단어는 성경에서 신약적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즉 틀린 단어입니다. 이 부분은 당당뉴스 [헌금 말고 연보하자]를 참조해 보십시오.

헌금을 쓰자고 주장하는 목회자들의 주장은 그것이 성경에서 어떻게 사용하든 상관 없이 하나님께 드림이 목적이라면 ‘연보보다는 헌금이 더 적절하다’는 것이죠.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시나요? 바로 여기서 한국교회의 퇴보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신약적 예배에서 구약적 제사로 회귀하고 있으며 심각한 복음의 퇴보가 일어난 것이죠. 이러한 현상은 헌금에만 있지만 않고 교회당을 ‘교회’로 사용하거나, 더 심하게는 ‘성전’이라는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있으며, 성전이라고 쓰면 거룩한 것처럼 교인들을 속이는 목사들까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각한 오류가 있음에도 신학자들도 침묵하고 있습니다. 물론 뒤에서 무식한 목사라고 욕하지만 앞에서는 침묵하거나 괜찮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퇴보의 실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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