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설교] 부활은 사건이다

부활은 지금 일어나는 하나님의 사건입니다

  • 본문 요한복음 5:19~2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의 계절에 함께 예배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흔히 부활을 과거의 이야기, 혹은 장차 있을 미래의 사건으로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요한복음 5장 말씀은 부활이 단지 시간 속의 한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 하나님의 현재적 사건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권세를 이미 가지고 계시며, 그 권세는 단지 마지막 날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말씀을 듣는 자 가운데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사건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부활을 다시 정의하게 될 것입니다. 부활은 기억해야 할 교리가 아니라, 지금 살아내야 할 실재입니다.

안식일 논쟁과 사건으로서의 부활의 시작

본문은 한 사건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이후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박해하기 시작합니다(요 5:16).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치유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이 드러내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요 5:17).

여기서 “일하다”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에르게타이(ἐργάζεται)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현재적인 하나님의 사역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창조 이후에 멈추신 분이 아니라 지금도 일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동일한 사역에 참여하시는 분으로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유대인들이 분노한 이유는 단순히 안식일을 어겼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요 5:18). 이 사건은 단순한 갈등이 아니라 계시의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부활의 중요한 전제를 발견합니다. 부활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신분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에 죽음을 이기실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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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아버지의 연합, 생명의 근원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요 5:19). 이 말씀은 단순한 순종을 넘어서 존재론적 연합을 말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동일한 생명 안에서 하나로 움직이십니다.

특별히 중요한 구절은 이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요 5:21). 여기서 “살리다”라는 단어는 조오포이에이(ζῳοποιεῖ)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생명을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창조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부활은 죽은 것을 다시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생명을 주시는 사건입니다. 즉 부활은 치료가 아니라 창조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은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 신앙은 개선의 신앙이 아니라 창조의 신앙입니다.

현재적 부활, 지금 일어나는 사건

예수님은 놀라운 선언을 하십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여기서 “옮겼느니라”는 헬라어 메타베베켄(μεταβέβηκεν)입니다. 완료형으로 사용되어 이미 이루어진 사건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부활은 미래에 일어날 일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사건입니다.

또한 말씀하십니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요 5:25). 여기서 “이 때라”는 표현은 매우 중요합니다. 부활은 종말에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흔히 부활을 무덤 이후의 이야기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부활은 말씀을 듣는 순간 시작된다고 말입니다.

여기서 부활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가 듣지 못하는가에 따라 이미 생명과 죽음이 갈립니다.

최종 부활과 심판, 그리고 책임

예수님은 동시에 미래의 부활도 말씀하십니다.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요 5:28).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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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부활의 이중 구조를 봅니다. 이미 시작된 부활과 아직 완성되지 않은 부활입니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이미와 아직의 긴장입니다.

부활은 단순히 생명을 얻는 사건이 아니라 심판과 연결된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부활은 하나님의 통치가 완전히 드러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활 신앙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책임을 동반합니다. 우리는 이미 생명으로 옮겨진 존재로서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활은 지금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은 예수님의 사건으로 끝난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활은 지금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죽음 같은 현실 속에 살아갑니다. 절망, 실패, 관계의 단절, 죄의 습관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고 말입니다(요 5:24).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미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사건을 현재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부활은 증명해야 할 교리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사건입니다. 오늘 이 예배 가운데, 말씀을 듣는 이 순간, 여러분 안에 생명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마무리

오늘 우리는 부활을 다시 정의했습니다. 부활은 과거의 기념이 아니라 현재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시며,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아직 무덤 앞에 서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생명으로 옮겨진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부활 이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삶이 아니라 생명을 누리는 삶, 죄에 묶인 삶이 아니라 자유를 사는 삶입니다. 부활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입니다.

기도문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여전히 죽음의 생각과 습관 속에 머물러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주님,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신 은혜를 붙들게 하옵소서. 말씀을 들을 때 생명이 시작되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시고, 부활의 능력을 오늘의 삶 속에서 살아내게 하옵소서. 두려움이 아닌 믿음으로, 절망이 아닌 소망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생명의 주님을 날마다 경험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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