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3장 묵상

마태복음 3장 개요

요셉이 애굽을 떠나 갈릴리로 돌아간지 약 27년 정도가 흐르고 나서 세례 요한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소년 시대는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고, 다른 곳에는 전혀 기록이 없습니다. 요셉이 애굽에서 약 3년 정도 있었을 것으로 보고 갈릴리에서 약 27년 정도 지나 30세가 되었을 때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고 공생애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성경에 예수님의 나이가 30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서른 즈음이란 표현은 나이를 말하기보다 사역을 위한 적절한 나이임을 드러낼 때 사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문자대로 해석하여 서른으로 보고 본문을 접근합니다.

마태복음 3장 구조

1-12절 세례 요한의 사역
13-17절 세례요한에게 세례 받는 예수

마태복음 3장 묵상

1-12절 세례 요한의 사역

세례요한은 이사야의 예언대로 예수님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자입니다. 먼저 사람들의 교만한 마음을 낮추고, 낮아진 마음을 높여 평탄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그 길로 사람들에게 다가갈 것입니다.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세례 요한은 어떤 사람일까요?

‘그때에’

어느 시기를 말하기보다 전환이 의미가 강합니다. 2장과 3장 사이는 약 25-28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하나님은 때가 되자 세례 요한을 불러 내십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많은 시간을 흘러 보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의 계획대로 역사를 이끄십니다.


누구에게나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힘이 있고 능력이 있어도 하나님의 때가 아니면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장 적당한 시대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가장 적합한 곳으로 부르십니다.

유대광야에서

광야는 세례 요한이 누구인지 보여줍니다. 그는 광야에서 메시아를 예비 하는 존재입니다. 광야는 인간의 삶을 불허 하는 공간이며 절대 고독의 장소입니다. 하나님께 내밀한 대화를 통해 존재를 드러냅니다. 광야는 곧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을 상기시킵니다. 세례 요한은 이스라엘이 광야의 길을 걸을 때로 곧장 소환합니다.

사람이 살기 힘든 곳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세례 요한은 스스로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에게 임하도록 하나님께 의탁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누구나 하나님을 말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는 없습니다. 세례 요한은 말이 아닌 삶으로 말씀을 경험했습니다.

회개하라

‘회개하라’는 헬라어 ‘메타노에오(μετανοέω)’의 문자적 의미는 ‘유턴하라’이며, 오던 길을 멈추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돌아가야 할 길은 어디일까? 요한은 이사야 말씀을 인용하여 주님의 길을 소개합니다. 그렇다면 회개하고 돌아가야 할 길은 주님께서 가시는 길입니다.

이사야 구절은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고토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른 말이다. 이사야 시절, 이미 바벨론의 포로와 귀환을 미리 보고 예언한 것입니다.

사 40: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포로된 이스라엘이 해방되어 돌아가는 곳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입니다. 다시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섬기며 예배 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곳으로 우리는 돌아가야 합니다.

요한의 모습

요한은 낙타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하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습니다. 1세기 당시 은자들의 모습과 거의 흡사합니다. 세례 요한에 대한 표현은 그가 세속적인 것과 멀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 입니다. 앞서 말한 ‘광야’와 ‘낙타털옷’은 동일한 상직적 의미를 갖습니다. 사람의 통제나 편리함을 떠나 고독하고 외롭고, 살아가기 힘든 삶의 환경에 놓였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인간의 삶에 종속되지 않는 날 것 야생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의 통제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선지자의 삶입니다. 선지자는 인간의 조직이나 권위에 종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존재이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고 종속된 삶, 그것이 세례 요한의 모습입니다.

후에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설명하면서 광야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언급은 선지자입니다. 선지자는 광야에 있습니다.

마태복음 11:7-15

마 11:7 그들이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마 11:8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마 11:9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마 11:10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마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마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 11:13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마 11: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마 11:15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

회개는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로서의 마땅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처럼 잎만 무성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갖추어야 할 거룩 순결 정직을 가져야 합니다.

불에 던져지리라

심판에 대한 언급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바벨론 포로를 겪은 면서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심판은 진행형입니다. 구약에서 심판은 물로 이루어졌지만 신약에서 심판이 불로 이루어집니다. 불은 모든 것을 태우고 없앱니다. 물이 율법을 의미한다면, 불은 성령의 불을 의미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은 ‘불의 혀’처럼 임합니다.

내 뒤에 오시는 이

예수님을 말씀하신다. 그는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신다. 물은 정결을 의미한다. 하지만 본질을 바꾸지 않는다. 하지만 불은 모든 것은 태워 버리고 없앤다. 불은 하나님의 임재이자 심판의 상징이다. 물로 세상은 온전해 지지 못한다. 불은 완전한 소멸이자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신약은 성령과 불의 시대다. 오순절 성령은 불처럼 임한다.

13-17절 세례 받으시는 예수님

갈릴리로부터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에 사셨다. 세례를 받기 위해 세레 요한에게 가신다. 그는 창조주요 구세주 이시지만 사람에게 세례를 받으신다. 겸손의 왕이자 자비의 주님이시다. 갈릴리는 변방이요 이방의 땅이다. 예수님은 친히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가장 천하고 버려진 곳으로 가셨다.

요한이 말려 이르되

요한은 너무 놀라 이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서열상 자신이 낮기에 도무지 할 수 없다 말한다. 하지만 주님은 이렇게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라 말씀하신다. 그렇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일이다.

하늘이 열리고

하늘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다. 죄를 지으면 하늘이 닫혀 비가 내리지 않는다. 은혜가 닫힌 것이다. 하늘이 열리면 비가 내린다. 은혜의 비다. 이제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

창세기 7:11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에스겔 1:1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말라기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이제 모든 것이 준비 되었다. 예수님은 왕으로서 사역을 시작할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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