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7장 묵상

마태복음 17장

개요

마태복음 17장은 예수님이 산 위에서 변화 된 모습과 산 아래에서 간질 건린 아이를 고치시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그곳에 있기는 원하지만 다시 내려와 공생애를 이어가신다. 다시 죽음과 부활을 예언하시고, 성전세를 내신다.

마태복음 17장 구조

  • 1-13절 산위에서 변형되신 예수님
  • 14-21절 아이를 고치시다.
  • 22-23절 죽음과 부활예고
  • 24-27절 성전세를 내시다.

마태복음 17장 묵상

1-13절 산 위에서 변형되신 예수님

1절 엿새 후

7일째입니다. 앞의 사건과 일주일의 차이입니다. 일주일은 창조의 완성의 시간이 흘렀다는 말로. 한 주기, 큰 시간의 흐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1절 베드로 야고보 요한

셋은 예수님께서 각별히 가까이한 제자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비밀을 더 깊이 드러내십니다. 왜 이들을 선택했을까요? 그럼 나머지 제자들은 덜 사랑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편애하지 않으십니다.

1절 높은 산

높은 산이 어딜까요? 갈릴리 어느 산일 겁니다. 갈릴리 주변에는 높은 산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마태는 ‘높은’이라 표현합니다. 이것은 유대적 사고입니다. 성경에서 산은 하나님 계신 곳이며, ‘높은 곳’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곳입니다. 우상들도 낮은 신은 땅에 있지만 높은 최고신은 산에 있습니다. 바알도 집이 갈멜산입니다. 하나님의 높으심과 능력을 드러내기 위한 문학적 표현입니다.

  • 사 2: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2절 변형 해같이

변형은 육신의 몸 안에 감추어진 신성의 현현이다. 본체를 드러내신 것이다. 해같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해는 하나님의 신성, 능력, 위엄을 말한다. 성경은 종종 하나님을 해로 비유하기도 한다.

  • 시 19:5 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3절 모세 엘리야

모세를 율법을,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한다. 모세를 모세오경으로, 엘리야는 선지서로 보기도 한다. 성경을 구분할 때 오경과 선지서로 구분하기도 한다.

예수님은 이들과 대화하신다.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알 수는 없지만 예수님의 사역이 구약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구약의 예언이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는 것을 의미한다.

4절 초막 셋

갑자기 베드로가 비몽사몽간에 끼어들어 초막 셋을 짓자고 한다. 하나는 주님, 하나는 모세, 하나님 엘리야를 위해서. 도대체 무슨 의도일까? 학자들마다 명확하지 않지만 ‘어리석다’는 뉘앙스로 말한다. 그리고 14절 이후 땅 아래와 비교하며, 산 위의 환상 속에서 정신을 차지 못하는 베드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찬양하고 기도할 때는 좋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야하고, 회사로 출근해야 한다. 다시 똥을 닦아야하고, 욕도 먹어야 한다. 복음은 환상이 아니라 현장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진짜 복음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의 빛과 소금’이다. 세상이 없다면 소금도 아니고 빛도 아니다.

5절 구름 속에서

구름은 하나님의 숨은 거처이자 임재의 상징이기도 하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시편 2편의 말씀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아들이란 표현은 사람의 아들이라 개념이 아니다. 또 다른 자신이란 뜻이다.

14-21절 아이를 고치시다.

17절 믿음이 없고

간질 걸린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을 찾아와 부탁한다. 제자들은 고치지 못했다면.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사랑을 향하여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꾸짓는다. 본질은 이것이다. 누구를 탓하지 말라. 원인은 너에게 있다라는 뜻이다.

종종 자신의 불신을 목회자의 무능으로 돌리는 성도들이 있다. 우리 목사님은 능력이 없어. 기도 능력도 없어 등등의 말을 한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목사는 의지하는 그릇된 본인의 신앙이다. 목사는 돕는 자이다. 기적을 베푸는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은 목사 없이 성도에게 곧바로 응답하신다. 그렇게 말하는 성도가 믿음이 없는 것이다.

18절 꾸짖으시니

귀신을 꾸짖자 귀신이 나갔다. 귀신도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다. 그럼 왜 처음부터 귀신이 오지 못하도록 막지 않은시냐? 그것은 마치 씨도 뿌리지 않고 그냥 열매를 맺게 하면 된다.는 악하고 어리석은 생각이다.

20절 겨자 씨 같은 믿음

우리는 겨자의 ‘작은’에 주목하지만 본질은 ‘생명’이다. 생명은 아무리 작아도 자란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겨자보다 작은 씨는 많다. 씨는 크지 않다. 다 작다. 중요한 건 생명이다.

22-23절 죽음과 부활예고

22절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님의 공생애는 갈릴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집과 같은 곳이다. 예수님의 초기 생애는 갈릴리 안에서, 중기는 갈릴를 중심으로, 마지막은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에서 마친다.

22절 인자가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로 표현한다. 인자는 메시아를 말한다.

23일 제 삼일에

삼일은 완전한 죽음을 말한다. 완전한 죽음 이후 다시 살아나실 것이다. 살기 위해 먼저 죽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24-27절 성전세를 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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