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장 묵상

마태복음 1장의 개요


마태복음의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나라’는 ‘왕국’을 뜻한다. 마태복음 1장은 예수님의 족보(기원)와 탄생을 설명하여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한다. 족보는 다윗의 후손으로서 왕으로 드러내고, 탄생은 사람의 성이 아닌 성령에 의해 탄생했음을 말한다. 족보는 모두 14라는 숫자에 맞춰져 있으며, 다윗을 드러낸다. 1장의 구조는 1-17절까지 족보, 18-25절까지는 탄생 설화를 말한다.

1-17절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18-25절 성령에 의한 잉태와 탄생

마태복음 1장 묵상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마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아브라함과 다윗은 유대인들에게 두 가지 기원자이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민족의 기원자이며, 다윗은 국가로서의 진정한 왕을 뜻한다. 다윗의 후손이란 구절을 통해 알듯이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며, 이스라엘은 다윗의 후손을 통해 통치 된다고 믿는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정통성은 다윗의 후손인가 아닌가로 결정된다.

다윗언약(The Davidic Covenant)

다윗 언약은 삼하 7:1-17까지의 내용이며, 가장 핵심적인 구절은 16절이다.

삼하 7: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은 다윗에게 사울처럼 왕위를 주고 뺏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뺏지 않겠다고 하신다. 이후의 모든 왕들, 정통성을 오직 다윗의 후손일 때 가능하다. 북이스라엘이 정통성을 상실한 이유는 성전을 버린 것도 있지만 첫 왕인 여로보암이 다윗의 후손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카비 시절 왕은 레위지파 제사장들이었다. 이후 헤롯도 이두매인이기에 다윗의 후손에 대한 열망은 신약시대의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마태는 가장 먼저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임을 밝히고 시작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된 것이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아브라함 – 2이삭- 3야곱 – 4유다(다말) – 5베레스 – 6헤스론 – 7람 – 8아미나답 – 9나손 – 10살몬(라합) – 11보아스(룻) – 12오벳 – 13이새 – 14다윗

마태복음 1: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마태복음 1: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마태복음 1: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마태복음 1: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마태복음 1: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나그네 인생

첫번째 단계의 14대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가나안에서 애굽까지의 여정을 그린다.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 가나안으로 향한다. 가나안에 지내면서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는다. 족장세대로 일컬어지는 가나안 방랑 생활은 이후의 모든 신앙의 정체성을 제공한다. 신약 성경 역시 ‘나그네’에 대한 개념을 가져와 적용합니다. 이스라엘이 나그네라는 점과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것이 신자의 모습이라 말한다.

사도행전 7장 6절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후손이 다른 땅에서 나그네가 되리니 그 땅 사람들이 종으로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디모데전서 5장 10절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

히브리서 11장 13절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베드로전서 1장 17절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나와 하란에서 오래 거주했다. 그리고 다시 가나안으로 들어갔다. 인생 자체가 방랑의 세월이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백 세가 되어 낳은 아들이며 아무런 형제도 없이 홀로 지내다 리브가와 결혼한다. 이삭은 마흔에 결혼하여 예순에 에서와 야곱을 낳는다. 리브가는 불임의 여성이었다. 야곱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애굽에서 숨을 거둔다. 이들은 장막에 거하면서 평생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다말과 라합, 그리고 우리야의 아내


우리야의 아내 즉 밧세바는 두 번째 14대로 넘어가지만 주의하여 볼 만한 이름들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 여인들은 모두 가나안 여인들이라는 점이다.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는 헷족속이다.


사무엘하 11장 3절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모두 여인들이 이방인이란 점과 정상적인 과정이 아니라는 점도 기이하다. 일반 왕의 족보라며 감히 이런 사실을 숨겼을 것이다. 다말은 시아버지와 그걸 했고, 라합은 창기였다. 밧세바는 정말 믿음의 여인이었을까? 그럼 왜 아무런 말도 없이 다윗에게 갔을까? 낮은 신분을 버리고 왕후가 되고 싶은 욕망의 여인은 아니었을까? 충분히 가능하다. 사실, 예수의 족보는 결코 깨끗한 족보가 아니다. 그런데 왜 이런 사실까지 숨기지 않고 적나라하게 공개하는 것일까?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까지

요시야 때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다. 우리는 족보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족보에는 구약에 기록된 인물 중에 몇 명이 빠져있다. 마태는 이러한 누락을 의도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1다윗(밧세바, 우리아의 아내)-2솔로몬-3르호보암-4아비야-5아사-6여호사밧-7요람-8웃시야-9요담-10아하스-11히스기야-12므낫세-13아몬-14요시야

마태복음 1: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마태복음 1:7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마태복음 1:8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마태복음 1:9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마태복음 1:10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마태복음 1:11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

다윗부터 요시야까지는 왕국 시대다. 모세에 의해 출애굽과 광야 시절을 보내고, 여호수아가 인도하며 요단강을 건너 7년 정복 전쟁을 치른다. 이후 사사 시대가 시작된다. 그리고 사울이 왕이 되고, 다윗이 이스라엘 2대 왕이 된다. 이후 솔로몬이 왕이 되고, 솔로몬의 우상숭배로 인해 나라는 북과 남으로 갈라진다. 북 왕국은 기원전 722년에 앗수르에 망하고, 남유다는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포로로 끌려간다. 여기까지의 역사적 배경이 두 번째 열네 대의 의미다.

이 시대는 기간적으로는 50년이 조금 넘는 기간이지만 성경 안에서 굉장히 중요한 시기다. 구약 성경의 4/4의 역사적 배경 시기다. 이 시기는 망각의 시간이다. 약속의 땅에서 도착한 이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한 것인가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결론은 실패다. 성공하지 못했고, 결국 죄를 짓고 멸망 당한다. 족보의 의미에서 본다면 소망없는 이스라엘이다. 인간의 역사는 정말이지 소망이 없다.

바벨론에서 그리스도까지

마태복음 1:12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마태복음 1:13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마태복음 1:14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마태복음 1:15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마태복음 1: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1여고냐 – 2스알디엘 – 3스룹바벨 – 4아비훗 – 5엘리아김 – 6아소르 – 7사독 – 8아킴 – 9엘리웃 – 10엘르아살 – 11맛단 – 12야곱 – 13요셉(마리아) – 14그리스도

이 시기의 포로의 시기다. 잠깐 독립하긴 했지만 다윗의 후손이 왕이 된 적은 없는 시기다. 북왕국는 포악한 앗수르의 정책으로 인해 안전히 파괴되어 역사에서 사라진다. 후에 섞인 민족들이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하지만 정통성을 상실한다.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바벨론은 이주 정책을 펴기를 했지만 대단히 자유로웠다. 한 곳에서 정착하도록 촌을 형성하게 했고, 포로지만 자유민처럼 공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가나안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에스라나 느헤미야, 역대기에 기록론 족보와 이름들은 이런 배경속에서 귀향한 자들을 추켜 세우는 일종의 칭송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18-25절까지는 예수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리아에 대한 요셉의 의로운 행위에 초점이 맞추어져있다.

마태복음 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마태복음 1: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마태복음 1: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태복음 1: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마태복음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복음 1:24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마태복음 1: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요셉과 마리아는 약혼한 사이다. 그런데 마리아가 잉태했다는 사실을 요셉이 듣게 된다. 약혼은 이미 결혼한 사이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에게 마리아의 임신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는 차마 죽일 수 없어서 조용히 혼인 관계를 끊으려 한다. 하지만 바로 이때 천사가 나타나 요셉에게 마리아의 임신 정체를 밝힌다.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 세상을 구원할 것임을 밝힌다. 환상을 본 것이다. 이제 환상과 현실 사이에 놓여 있다. 요셉은 어떻게 했을까? 그는 결정적 순간에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을 선택한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하나님께서 이루시지만 홀로 행하시지 않고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참으로 놀라운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연약하고 흠 많은 사람들을 사용하시며 그들의 결단과 헌신을 기꺼이 받아 주신다.

마태는 예수의 탄생을 이사야의 예언에서 끌고 온다.

마태복음 1장 23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사야 7장 14절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임마누엘은 히브리어도 동일하다. 임마누엘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요한은 이 이미지를 가져와 예수의 성육신에 적용한다.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여기에 ‘거하신다’는 헬라어 스케노-(σκηνόω)는 ‘장막을 치고 살다(live in a tent)’는 뜻으로 광야에 장막에 거하시던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이것이 임마누엘의 뜻이다.

나가면서

은혜의 족보

족보의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가 왕임을 분명해 보여준다. 하지만 흠 많은 족보다. 아니 부끄러운 족보다. 숨기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그럼에도 왜 숨기지 않을까? 그것은 ‘은혜’라는 단어 외는 해석할 방법이 없다.

성취하시는 하나님

족보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까지의 약 2200년의 기나간 세월을 관통한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건과 사연이 있었을까? 말로 다 못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위중한 시대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취소되지 않도록 모든 것들을 통치하시고 만들어 가신다.

요셉의 헌신

요셉은 마리아가 앉은 문제는 떠안는다. 그가 아무리 성령에 의해 잉태되었다고 주장한들 믿을까? 요셉은 환상을 따를 것인지 세상의 방법대로 처리할 것인지 갈림길에 섰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환상을 따랐다. 홀로 그곳에 그 길을 가기로 했다. 믿음의 길은 고독한 것이다. 아무리 설명해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요셉의 위대한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렸다. 기꺼이. 그는 진정 고독한 왕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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