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5장 전체 개관
“가장 어두운 자리까지 내려가시는 예수”
군대 귀신 들린 자, 열두 해 혈루증 여인, 죽은 소녀를 살리시는 예수
마가복음 4장 마지막(풍랑을 잠잠케 하심: “그가 누구이기에…”)의 질문이 5장에서 계속해서 더 깊은 차원에서 답을 얻습니다.
- 자연(바람·바다) 위의 권세 → 4장
- 귀신과 악한 영 위의 권세 → 5장 상반부
- 질병과 사회적·종교적 부정 위의 권세 → 5장 중간
- 죽음 위의 권세 → 5장 후반
한 장 안에서 “귀신–병–죽음”이라는 인류의 가장 근원적인 두려움을 전부 직면하시고, 예수께서 그 위에 서 계심을 드러내는 구조입니다.
1. 구조 개관 (5장 전체 흐름)
- 거라사(거라딘/거라사) 지방 군대 귀신 들린 자 치유 (5:1–20)
- 야이로의 딸을 살리러 가는 길 – 열두 해 혈루증 여인의 치유 (5:21–34)
- 야이로의 딸 살리심 –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5:35–43)
2. 본문 단락별 내용 요약
1) 거라사 지방의 군대 귀신 들린 자 (5:1–20)
(1) 배경 – “저편” 이방 지역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를 건너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십니다. 여기부터는 전형적인 유대 지역이 아니라, 돼지를 기르는 것으로 보아 이방적 색채가 강한 지역으로 이해됩니다.
즉, 예수는 단지 “집 안(유대)”이 아니라 “이방의 땅”으로 경계를 넘어서 가십니다.
(2) 귀신 들린 사람의 비참한 상태
무덤 사이에 사는 한 사람이 예수를 맞으러 나옵니다.
-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제어할 수 없어 늘 결박을 끊고,
- 밤낮 무덤 사이와 산에서 소리 지르고 돌로 자기 몸을 해치는 자,
- 공동체에서 완전히 격리되고, 인격이 파괴된, 극단적인 고통의 상태입니다.
이 사람은 “사람”이라기보다, 모든 상처와 파괴된 영혼들의 집합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그가 예수를 보고 달려와 엎드리며 크게 소리칩니다.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에게 나오라고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3) “군대” 귀신, 그리고 돼지 떼로의 들어감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실 때, 그가 대답합니다.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군대”(레기온)는 로마 군단(약 6천 명)에 해당하는 말로, 압도적인 수의 악의 세력이 한 사람을 짓누르고 있음을 그려 줍니다.
귀신들은 자기들을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말 것을 강청하며, 거기 있던 많은 돼지 떼에게로 보내 달라고 간청합니다.
예수께서 허락하시자, 더러운 귀신들이 돼지들에게 들어가니, 약 이천 마리 돼지 떼가 바다로 몰려가 몰사합니다.
이는 몇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 악의 세력은 파괴적이다 – 들어간 곳을 끝내 파멸로 이끕니다.
- 예수의 한마디 허락 앞에, 수많은 귀신이라도 결국 권세를 잃고 쫓겨난다는 점.
- 눈에 보이는 결과(돼지 몰살) 때문에,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를 두려워하고 거절합니다.
(4) 변화된 사람, 두려워하는 마을 사람들
돼지를 치던 자들이 도망가 이 일을 성 안과 마을에 알리자, 사람들이 나와서 예수와 귀신 들렸던 자를 봅니다.
- 그는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 곁에 앉아 있습니다.
이 장면은 복음의 목적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무덤 사이에 나체로 뛰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예수 곁에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놀라운 회복보다, 자기들의 경제적 손실과 두려움을 더 크게 느낍니다. 그래서 예수께 “우리 지경에서 떠나달라”고 간청합니다.
복음은 때로 경제적 손해와 가치관의 전복을 동반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의 현존 자체를 부담스러워 할 수 있습니다.
(5) 예수께서 보내시는 첫 이방 선교사
귀신에서 해방된 그 사람은 예수와 함께 배를 타고 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고 말씀하십니다.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알리라.”
그는 곧 가서 데가볼리(열 도시)에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행하신 큰 일을 전파합니다.
즉, 이 사람은 이방 지역의 첫 번째 복음 증거자가 됩니다.
“함께 있고 싶어 하는 소원”을 거절하시고, 예수께서는 그를 자기 자리(고향, 일상)로 보내십니다. 이것은 마가복음 3:14의 “함께 있게 하시고 보내사”라는 제자도 패턴과 연결됩니다.
2) 야이로의 딸과 혈루증 여인 (5:21–43)
이 부분은 두 이야기가 끼어들어 서로를 해석하는 구조입니다.
- 겉으로는 존경받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12살, 막 죽게 된 아이)
- 사회적으로 철저히 소외된 혈루증 여인(12년 동안 피 흘린 여자)
“열두 해”라는 숫자는 두 이야기 사이의 의도적 연결고리처럼 보입니다.
(1) 야이로의 간청 (5:21–24 상)
예수께서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오시니, 큰 무리가 모입니다.
그 중 회당장 야이로가 와서 예수 발 아래 엎드려 간청합니다.
-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예수께서는 그와 함께 가시고, 큰 무리가 함께 따라 밀려듭니다.
(2) 열두 해 혈루증 앓던 여인의 등장 (5:24 하–29)
그때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아 온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당했고, 가진 것도 다 허비했지만 아무 효험이 없고, 오히려 더 중하게 된 상태.
- 율법상 피 흘리는 여인은 부정한 자로 간주되어, 사람과의 접촉과 예배 공동체 참여에서 철저히 소외됩니다.
-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영적·사회적 고립, 수치심이 겹친 상태입니다.
그녀는 예수에 대해 듣고,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합니다.
뒤에서 몰래 예수의 옷에 손을 대자, 곧 혈루의 근원이 마르고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닫습니다.
(3) 예수의 멈춤과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5:30–34)
예수께서는 “그의 몸에서 능력이 나간 줄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십니다.
-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제자들은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면서 누가 손을 대었냐고 하십니까?”라고 반응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냥 지나가지 않으십니다.”
여인은 두려워 떨며 나와 사실을 모두 고백합니다.
예수께서는 그녀에게 말씀하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몇 가지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 예수께서 그녀를 “딸아”라고 부르십니다.
- 12년 동안 부정하다고 여겨졌던 여인을 딸로 불러 주심으로,
- 단지 병만 고친 것이 아니라, 소속감과 관계, 정체성을 회복시키십니다.
- 여인의 믿음은 “완벽한 교리 이해”가 아니라, 예수께로 절박하게 손을 뻗는 신뢰였습니다.
- 예수는 자신의 능력에서 “익명으로” 나가는 치유를 원치 않으시고,
- 그 믿음을 공개적으로 확인시키고,
- “수치심 속에 숨은 치유”를 “존엄을 회복하는 만남”으로 바꾸십니다.
(4) 야이로에게 들려온 소식과 예수의 말씀 (5:35–36)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동안,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말합니다.
-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사실 야이로 입장에서는, 예수께서 혈루증 여인과 시간을 보내시는 동안에 딸이 죽었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바로 이때 예수께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여기서 믿음 vs 두려움이라는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혈루증 여인은 두려움 속에서도 믿음으로 손을 뻗었고, 야이로는 딸의 죽음이라는 현실 앞에서 믿음을 포기할 위험에 놓여 있습니다.
(5) 소녀의 죽음과 예수의 말씀 (5:37–40)
예수께서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데리고 가십니다.
집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울며 통곡합니다.
예수께서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은 예수를 비웃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다 내보내시고, 아이의 부모와 제자들만 데리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십니다.
이 장면은 믿음의 공간과 조롱의 공간을 분리시키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6) “달리다굼” – 죽은 소녀를 살리심 (5:41–43)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말씀하십니다.
“달리다굼”(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소녀는 곧 일어나 걸어 다닙니다(열두 살).
사람들은 곧 크게 놀라 놀랍니다.
예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지 말라고 여러 번 당부하시고,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그분의 관심은 단지 “기적의 쇼”가 아니라, 살아난 생명이 일상 속에서 제대로 돌봄을 받는 것까지 이어집니다.
3. 신학적 포인트 정리 (5장 전체)
1) “경계 너머로” 나아가시는 예수
- 거라사 지방(이방 땅), 무덤 사이, 돼지 떼, 부정한 영…
- 혈루증 여인의 부정, 죽은 소녀의 시신 등
구약 율법 기준으로 보면 부정의 삼중·사중 밀집 지대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모든 경계(유대/이방, 정결/부정, 생명/죽음)를 의도적으로 넘어서 들어가십니다.
→ 신학적으로:
예수는 “깨끗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머무르는 경건한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가장 부정하고 절망적인 자리까지 내려와서 거기서부터 새 생명을 일으키시는 하나님 나라의 주입니다.
2) 악한 영, 질병, 죽음 위의 절대 권세
- 군대 귀신 → 돼지 떼로 쫓겨나 몰사
- 혈루증 12년 → 즉시 마름
- 죽음에 이른 소녀 → 손을 잡으시고 일으키심
4장에서 자연(바람과 바다)에 대한 권세를 보였다면, 5장은 영적·육체적·궁극적(죽음) 차원의 권세를 한 번에 보여 줍니다.
마가복음 전체의 질문, “이 분이 누구신가?”에 대해 5장은 “만유 위에 주 되신 이”라는 신학적 답을 제시합니다.
3) 믿음과 두려움의 대조
5장은 계속해서 믿음 vs 두려움의 장면을 교차시킵니다.
- 거라사 사람들: 회복된 사람을 보고 두려워하며 예수를 거절
- 혈루증 여인: 두려워 떨지만, 믿음으로 손을 내밈 →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 야이로: 딸의 죽음 소식 앞에 믿음이 흔들릴 상황 →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 소녀의 집의 사람들: 예수의 말씀을 비웃음 → 예수는 그들을 내보내고, 믿음의 공간에서 아이를 살리심
마가복음의 제자도는,
현실의 두려움을 아예 없애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중에도 예수께 향하는 믿음의 방향을 선택하는 것으로 제시됩니다.
4) 복음과 공동체: 혼자가 아니라 보내심 받은 증인
- 거라사 귀신 들렸던 사람: “함께 있고 싶어 하는 제자”가 아니라, 자기 자리로 돌아가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됨.
- 혈루증 여인: 몰래 치유만 받고 끝낼 수 있었지만, 예수께서 그를 공동체 앞에서 ‘딸’로 선포하시며 회복된 자로 세우심.
- 소녀: 살아난 뒤에 “먹을 것을 주라”는 예수의 명령은, 가족과 공동체가 그녀를 계속해서 돌보고 품어야 할 책임을 강조합니다.
복음은 개인의 내면적 평안으로 끝나지 않고,
항상 공동체 안에서의 회복, 사명, 돌봄으로 이어집니다.
4. 설교 및 적용 포인트
1) 군대 귀신 들린 자 본문 (5:1–20)
설교 방향 예시
- “무덤 사이의 사람” –
- 오늘날 공동체에서 완전히 소외된 사람들,
- 정신적·영적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
- 중독과 자해, 자기 파괴적 행동에 빠진 사람들의 상징으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 교회가 이들을 피하는가, 아니면 예수처럼 찾아가는가를 질문하게 할 수 있습니다.
- “군대”라는 이름 –
- 한 사람 안에 얼마나 많은 상처, 죄책감, 수치, 두려움이 뒤섞여 있는지,
- “내 안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군대 같은 힘들”을 다루는 설교로 확장 가능합니다.
- 경제적 손실 vs 한 영혼의 회복 –
- 돼지 이천 마리 몰살을 보고, 사람들은 예수가 불편해졌습니다.
- 오늘날 교회가 “한 사람의 온전한 회복을 위해 경제적·시간적 손해를 감수하는가?”
- 혹은 “교회 시스템과 재정을 건드리는 사람을 자연스레 밀어내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회개와 도전.
- “네 집으로 돌아가 알리라” –
- 모든 성도가 “목회자처럼 떠나는 것”이 아니라,
- 자기 집, 자기 일터, 자기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부름받았다는 평신도 사역의 메시지로 설교 가능.
2) 혈루증 여인 본문 (5:24–34)
설교 방향 예시
- “12년의 고통과 침묵” –
- 아무에게도 말 못한 고통, 특히 여성의 몸과 관련된 질병,
- 수치심 때문에 숨겨진 눈물과 성도들의 보이지 않는 상처에 공감하는 설교.
- “옷에만 손을 대어도” –
- “완벽한 믿음”보다, 상처와 두려움 속에서라도 예수께 손을 내미는 믿음의 가치를 강조.
- 성도들에게 “지금의 연약한 믿음이라도 좋으니, 그 상태로 예수께 손을 뻗어 보라”는 초대.
- “딸아” –
- 12년 동안 “부정한 여인”으로 불리던 사람이, 예수께 “딸”로 불리는 장면은,
- 교회 공동체가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름, 새로운 정체성을 불러주는 자리여야 함을 보여줍니다.
-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
- 예수는 익명적 기적이 아니라, 인격적 만남을 원하십니다.
- 단지 “기도 응답 리스트”를 채우는 신앙이 아니라, 주님과의 인격적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방향으로 설교할 수 있습니다.
3) 야이로의 딸 부활 본문 (5:35–43)
설교 방향 예시
- “너무 늦어 보이는 순간” –
- “이제 다 끝났다”라고 느끼는 지점에서 들려오는 말씀,
-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를
- 병, 가정해체, 실패, 죄의 중독 등 구체적 삶의 상황에 대입해 적용할 수 있습니다.
-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
- 예수의 시각에서 보면, 우리가 ‘끝’이라 부르는 것도 부활의 관점에서는 ‘잠시’입니다.
- 죽음에 대한 기독교적 소망, 부활 신앙을 설교하는 본문으로 사용 가능합니다.
- 비웃음 속에서 만들어지는 믿음의 공간 –
- 예수께서 조롱하는 자들을 내보내고, 믿음의 공동체만 데리고 들어가시는 모습은,
- 믿음의 분위기와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 가정과 교회가 “믿음의 언어가 살아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함을 도전.“먹을 것을 주라” –
- 기적 이후의 돌봄,
- 회심·부흥 집회 이후의 양육과 케어,
- “살아나게 하는 것”과 “살아 있게 하는 것” 사이의 균형을 목회적으로 풀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6장은 다음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6장: 고향에서 배척, 열두 제자 파송, 세례 요한의 죽음, 오병이어, 물 위를 걸으심
으로 이어지면 “믿음과 불신앙, 제자도, 떡의 기적”이라는 주제가 더 분명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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