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강해 1장, 눈물의 귀향

룻기 1장 개요

룻기의 시작은 실향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사사시대 베들레헴에 살던 엘리멜렉 가족이 기근을 피해 모압으로 떠납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남편 엘리멜렉을 죽고 나오미와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 남습니다. 나오미는 두 아들을 모압 여인 오르바와 룻에게 장가들게 합니다. 하지만 무슨 연유인지 두 아들도 죽고 나오미 홀로 남게 됩니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를 고향인 모압의 어머니 집으로 돌려 보내고 자신만 베들레헴을 돌아갈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두 며느리는 돌아가지 않고 나오미를 따릅니다. 나오미가 거듭 권유하지 오르바는 떠나 룻만 남게 베들레헴으로 돌아갑니다. 실향과 귀향 사이에 나오미는 나오미(기쁨)가 아닌 마라(고통)가 되고 말았습니다.

룻기 1장 구조

1-5절 모압에서의 생활

6-14절 고향으로 돌아가는 오르바

14-22절 나오미를 따르는 룻

룻기 1장 강해

1-5절 모압에서의 생활

사사시대와 흉년

성경에서 흉년은 하나님의 저주로 인식됩니다. 사사시대는 하나님을 잃어버린 시대요 각기 제 마음대로 행하던 시대입니다.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렸을 때 하나님은 기근을 주심으로 그들을 징벌하십니다.

흉년을 피해

누구나 같은 마음일 겁니다. 아브라함도 가나인에 기근이 들 때 애굽으로 피했고, 이삭 역사 블레셋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예에서 보듯 하나님의 징계를 받지 않고 피하려 하면 항상 좋지 않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죽고 죽고

모압으로 내려 간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인 엘리멜렉이 죽습니다. 나오미는 급한 마음에 모압 여자들에게 자신의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결혼 시킵니다. 모압 여인들은 오르바와 룻입니다.

  • 룻은 누구의 아내인가?

성경을 읽을 때는 궁금하기는 했지만 크게 문제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룻의 남편이 누구인가 싶어 자료를 찾아보니 여기에 적지 않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먼저 룻 4:10에서는 ‘말론의 아내 모압 여린 룻’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평행대구법에 의하면 기룐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도 성경을 해석하나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물론 저는 룻이 기룐의 아내라는 주장에 황당함과 어이 없음에 한 표를 주고 싶을 뿐입니다. 기룐의 아내 룻에 대한 주장은 “룻은 말론의 아내인가 기룐의 아내인가”를 참조하십시오.

하지만 10년 정도 지났을 때 말론과 기룐까지 죽고 나오미만 남게 됩니다. 신기할 정도로 두 아들은 후손을 남기지 않음으로 대가 완전히 끊기게 됩니다. 이것은 대를 잇지 못한다는 개념을 넘어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의 땅이 상실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살기 위해 모압으로 내려 갔지만 모든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기쁨이란 뜻의 나오미는 이제 고독과 슬픔만이 남아 있습니다.

6-14절 고향으로 돌아가는 오르바

그녀는 일어나

6절을 히브리 원문 순서로 하면 굉장히 실감이 납니다.

  • 일어섰다 그녀는, 며느리들과 돌아섰다 시골로부터 모압의, 왜냐하면 그녀는 들었다 시골로부터 모압의, 그것은 주의했다 야훼 그의 사람들 주었다 빵을.
  • וַתָּ֤קָם הִיא֙ וְכַלֹּתֶ֔יהָ וַתָּ֖שָׁב מִשְּׂדֵ֣י מֹואָ֑ב כִּ֤י שָֽׁמְעָה֙ בִּשְׂדֵ֣ה מֹואָ֔ב כִּֽי־פָקַ֤ד יְהוָה֙ אֶת־עַמֹּ֔ו לָתֵ֥ת לָהֶ֖ם לָֽחֶם׃

주의해서 볼 부분은 ‘일어섰다’와 ‘돌아섰다’는 것이다. ‘돌아서다’의 ‘쇼브(שׁוּב)’는 우상에서 하나님께 돌아서다, 회개하다, 마음을 바꾸다, 삶을 변화 시키다 등의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또한 ‘빵’은 레헴으로 ‘베들레헴’의 그 ‘레헴’입니다. 베들레헴을 직역하며 빵집이 됩니다.

성경기자는 ‘일어서다’ ‘돌아서다’을 앞 부분으로 배치시키면서 히브리어의 독특한 동사 우선의 문장 구조를 통해 그녀가 드디어 결단을 끝내고 행동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약속의 땅을 떠나 모압으로 내려온 것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엘리멜렉은 모압으로 거주할 목적으로 내려왔고, 하나님은 그것을 잘못된 판단이라 선언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바로 ‘돌아서다(שׁוּב)’는 단어를 통해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8절)

같이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어머니님의 집으로 돌아가라'(8절)말합니다. 아버지의 집이 아니라 어머니의 집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 창세기 24장 28절 소녀가 달려가서 이 일을 어머니 집에 알렸더니
  • 아가 3장 4절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머니 집으로, 나를 잉태한 이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
  • 아가 8장 2절 내가 너를 이끌어 내 어머니 집에 들이고 네게서 교훈을 받았으리라 나는 향기로운 술 곧 석류즙으로 네게 마시게 하겠고

어머니의 집으로 사용된 모든 곳은 결혼과 연관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집은 모태로 다시 돌아간다는 의미이며,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즉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재혼하라는 말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까요? 나오미에게 자녀도 없고, 굳이 따라올 이유도 없기 때문입니다. 나오미는 며느리들이 너무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살아가는 것이 안타까웠던 것이죠. 나오미가 책임을 질 수 있는 힘도 없었던 때문이기도 합니다.

많은 성경에서 ‘어머니’라는 개념이 그러한 의미를 갖고 있지만 룻기에서는 더욱 강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8절에서 ‘어머니의 집’은 10절에서 ‘어머니의 백성’으로 확장되며, 16절에서는 ‘어머님의 하나님’으로 확장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다음 단락에서 더 깊이 다룹니다.

오르바의 뜨거운 작별의 키스

나오미는 다시 두 며느리를 설득합니다. 남편 없이 살기를 바라지 않을 뿐더러 여호와의 손이 자신을 쳤으므로 더욱 마음이 아프다고 말합니다. 나오미는 아무리 봐도 더 이상 소망이 없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은 깊은 침체로 나아가게 합니다. 결국 오르바는 나오미와 이별의 키스는 나눈 후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오르바의 선택을 비방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는 너무나 당연하고 합리적 선택을 했을 뿐입니다.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선택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최고의 은혜를 놓치게 합니다. 옳은 선택, 지혜롭고 합리적인 선택이 최고의 선택은 아닙니다.

14-22절 나오미를 따르는 룻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한참을 걸아가다 나오미가 또 남은 룻에게 강권합니다. 아마도 앞에 한 말을 또 했을 것입니다. 남편도 없고, 남편을 만나 아이를 낳는다 해도 너무 길다는 등등의 말입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조용하던 룻이 갑자기 말하기 시작합니다. 룻기 내에서 룻이 가장 주도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부분은 이곳 밖에 없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철저히 수동적이고, 나오미의 말에 순종적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만은 룻이 절대 물러서지 않습니다. 룻이 나오미이게 한 말은

  •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말라.
  • 어머님이 머무는 곳에 나도 머문다.
  •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
  • 어머니가 죽는 곳에 나도 죽는다.

참으로 놀라운 고백입니다. 즉 어머니와 나(룻)은 한 몸이라는 것이죠. 참으로 신기할 일입니다. 남편이 죽고, 자신과 다른 민족이고,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말입니다. 누구나 행복하고 부자가 되는 모습을 보고 그것을 따라 가려 하지, 불행하게 되면 하나님을 믿으려 할까요? 하나님께서 작정한 사람은 어떤 환경이라도 하나님을 믿기 마련인가 봅니다.

나를 마라라 부르라

베들레헴에 돌아오자 사람들이 나오미를 환영합니다. 하지만 나오미는 비참합니다. 나오미는 ‘기쁨’이지만 자신은 더 이상 기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자신을 ‘마라'(20절)라 부르라고 합니다. 마라는 ‘쓰다’ ‘고통스럽다’는 뜻입니다.

처음 나갔을 때 나오미는 풍족했지만(21절) 지금은 빈털털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이 베들레헴에 돌아왔을 때는 ‘보리 추수'(22절)를 시작할 때였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 타이밍입니다. 우연처럼 보이는 수많은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나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그 우연들을 필연으로 새롭게 창조하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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