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일곱교회 서머나 교회

서머나 교회

서머나 교회 개요

서머나는 소아시아 서부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에베소에서 북쪽으로 약 80km 정도에 위치하며, 당시 인구가 2-30만에 이르는 거대한 도시였다. 당시에 인구가 1만만 넘어도 큰 도시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당시로서는 정말 거대한 도시였다. 소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도시로 알려져 있고, 현재도 도시는 이즈미르로 230만 정도의 휴양 도시로 유명하다.

서머나의 뜻은 ‘몰약성’1으로 항구 도시였던 서머나는 몰약이 많은 거래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몰약은 값비싼 향료로 거액에 거래되었다. 적은 양으로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는 몰약은 무역의 임기 품목이었다.

[본문 읽기]

  • 계 2: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 계 2: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 계 2: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 계 2: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주해와 강해]

8절 처음이며 마지막이며

이 표현은 하나님에 대한 소개문으로 사용된다. 이사야에 두 번(사 44:6, 48:12) 등장하며, 계시록에 세 번 등장한다.

  • 사 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처음과 마지막은 창조를 의미한다. 피조물은 시간에 갇혀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초시간적이며 영원하신 분이시다. 하나님께는 처음도 없고 마지막도 없다. 처음과 마지막은 영원을 설명하기 위한 표현일 뿐이다. 모든 시간의 주인이시며, 영원히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고 있다.

8절 죽었다가 살아난

앞 부분과 연관되어 있다. 처음과 나중은 영원성을 상징한다. 하지만 ‘죽음’은 영원과 대립된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표현일까? 우리는 이 부분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임을 즉시 알아 챈다. 그럼에도 왜 왜 표현이 서머나 교회에 필요한가이다.

먼저 영원과 죽음은 결국 죽음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간의 육신적 죽음을 넘어 영원한 세계까지 지배하시는 분이신다. 하나님은 죽지 아니하신다. 서머나 교회에 죽음 이후의 삶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곳이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순교지이기 때문이다. 특히 초대교회 속사도인 유명한 폴리갑이 순교를 당한 곳이다.

죽음 이후에 영원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주님은 그러한 질문에 자신을 죽었다 살아난 존재로 소개하며,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순교한 폴리갑에 대해 무의미한 죽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며, 또한 박해로 인한 순교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9절 네가 부요한 자니라

앞 부분에 ‘네 환란과 궁핍을 알거니와’를 강조하고 다시 부유한 자라고 선언하신다. 교인들은 스스로 환난과 궁핍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 이것은 자신들에 대한 평가이다. 하지만 주님은 ‘너희는 부유하다’라고 선언하신다. 사람들의 판단과 주님의 판단은 극과 극이다.

환난과 궁핍은 같은 의미다. 예수를 믿는 다는 이유 수많은 사회적 박탈, 소외를 당함으로 그들은 궁핍해졌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 유대인들이 기독교인들을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소외를 시키고 정부에 고소하여 핍박했다. 결국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에 의하여 고통을 당했고, 가난해 진 것이다.

9절 사탄의 회당

주님은 유대인들을 향하여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다’라고 선언하시고, ‘사탄의 회당’이라 칭하신다. 얼마나 놀라운 표현인가?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으며, 유일신을 숭배한다고 하지만 거짓이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며, 진리를 따르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신들을 하나님의 백성이라 칭한다. 예수님은 그들의 악행을 보시며, ‘사탄의 회당’이라 칭하신다.

초대교회 시대에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을 핍박 했으며, 이단 사이비로 취급했다. 정말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사는 늘 반복된다. 중세 시대 타락한 교회는 교회를 개혁하려는 이들은 화형시키고, 이단으로 내 몰아 핍박한다. 진리를 말하고, 사랑을 외치지만 살인과 독기와 독선이 가득하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10절 마귀가

유대인들을 조직적으로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죽음으로 내몰았다. 거짓된 종교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잘 보여준다. 극단적 보수적 사고를 가진 종교인들이 얼마나 무서운가는 현대의 이슬람극단주의자들과 이스라엘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수많은 살상을 하고도 ‘거룩한 전쟁’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마귀다.

10절 십 일 동안

관용적 표현이다. 십 일은 백이나 천과 같은 완전한 시간을 의미한다. 하지만 천이라 말하지 않고 10일이라 말하는 것은 그 기간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극심한 환란이 오지만 그 기간을 길지 않을 것이다.

‘십 일’이 진짜 10일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는데 어불성설이다. 그들은 진정으로 역사를 모르는 바보들이다. 요한계시록 이후 얼마나 많은 사건들과 핍박이 있었던가? 십 일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자들은 학자로서의 자격이 없는 자들이다.

10절 죽도록 충성하라

충성이란 단어는 믿음이 충만한, 충분히 믿을 수 있는 이란 뜻이다. 누구를 믿을 수 있는가 변치 않는 사람이다. 그는 변하지 않는다. 여기서 변치 않는 마음은 악에서 돌이키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일향 변함없는 믿음과 행위를 말한다. 주님은 이것을 충성이라고 말씀하신다.

충성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주님은 ‘죽도록’이다. 믿음은 목숨을 바쳐서 하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믿음을 갖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는 것이 아니다. 죽도록 충성해야 한다.

결론

서마나 교회는 영원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육신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 그 이후에 다른 삶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죽음을 두려워 해서는 안되고 끝까지 충성해야 한다. 11절에서 ‘둘째 사망의 해’를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러한 영원한 생명을 강조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1. 일반인도 쉽게 읽는 요한계시록- 서머나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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