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아디라 교회
성경본문
- 2: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 2: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 2: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 2: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 2:22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 2: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 2: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 2: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 2: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 2: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 2: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 2:29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서론: 두아디라는 어떤 곳인가?
두아디라는 지금의 터키 아히사르 북쪽에 위치한 버가모와 사데 사이 65km 정도 내륙에 위치합니다. 두아디라는 태양신 두림누스(Thyrimnus)의 성지로 설립되어 펠로피아(Pelopia)로 명명되었습니다. 기원전 301-281년, 셀류쿠스 니카토로(Seleucus Nucator)에 의해 국경 요새로 재건되기에 이릅니다. 이후 기원전 190년 버가모에 종속되고, 주전 133년에는 로마에 의해 지배당하게 됩니다.
기원후 2세기 초반까지 버가모의 한 구역에 속해있다 카라칼라 시대부터 독립적인 지역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아마도 도시 자체가 그리 크지 않아 주변에 큰 도시였던 버가모에 종속된 것으로 보입니다. 수세기에 걸쳐 잦은 전쟁으로 인해 두아디라는 정치적인 불안정과 군사적 분주함 속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두아디라는 바울의 전도를 받고 유럽에서 최초로 기독교인이 된 루디아의 고향이기도 합니다.(행 16:14)1 두아디라는 고대로부터 염색이 발달되어 있었고, 염색공 동업 조합이 만들어질 정도로 염색에 관련된 상업과 직업이 발달한 곳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옷감 상인과 제빵공, 제혁공, 도공, 양털 상인, 노예 상인, 제화공, 염색공, 구리 세공인들은 조합을 만들어 자신들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이들 조합들은 이방종교와 긴밀하게 밀착되어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은 조합에 의해 적지 않은 압박을 받았습니다. ‘길드(조합)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축제는 우상숭배를 핵심으로 하고 있으며, 이를 거부한다는 것은 신용과 사업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두아디라에서 주로 숭배한 신은 태양신이며 제우스의 레토 사이에 태어난 아들인 아폴로(Απόλλων)입니다. 레토는 아폴론 외에 여신인 아르테미스를 더 출생합니다. 아르테미스는 성경에서 에베소 도시가 주로 섬겼던 아데미 여신을 말합니다. 아폴론은 태양과 예언, 광명, 의술, 궁술, 음악, 시 등을 주관하는 신입니다.
헬라신화에서는 아폴론으로 로마시대에서 아폴로로 불립니다. 아폴론은 올림푸스 12신의 두 번째 신이며, 월계수와 리라, 활과 화살, 백조, 돌고래 등이 상징물입니다. 아폴론을 신탁(예언)과 음악, 그리고 활을 쏘는 능력을 가진 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젊고 미남형의 모습은 뭇 여성들의 사랑을 온몸에 받았습니다. 살아있는 신으로 추앙받은 로마의 황제들은 종종 아폴론과 동등한 인물로 비유되기도 합니다.
두아디라교회에 소개되는 예수님
예수님은 두아디라교회에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니의 아들’(18절)로 소개합니다.
- 계 2: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헬라어 어순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로 시작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른 곳은 굉장히 드뭅니다. 그러나 신약의 저자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이미 불렀습니다. 신약의 저자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지만 신학적 특징을 잘 드러내는 몇 곳만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란 표현의 뜻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말이며,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까지 확장될 수 있는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왜 두아디라 교회에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할까요? 그것은 두아디라교회가 자리한 두아디라 지역이 제우스의 아들인 아폴론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이며, 아폴론과 같은 신의 아들임을 자처한 황제 숭배 사상 때문이었습니다. 황제가 신의 아들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로마 황제들은 특징적으로 공적 서신과 칙령들의 서문의 직함에서 신성시된 그들의 선임자들의 아들이나 양자라는 특별한 의미에서 자신들이 ‘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 아우구스투스가 에베소에 보내는 한 편지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신 줄리어스의 아들, 황제 카에사르”
불꽃 같은 눈, 주석으로도 된 발
그런데 하나님이 아들이 눈은 불꽃같고, 발은 빛난 주석과 같습니다. 불꽃같은 눈은 1:14에서 주석과 같은 발은 1:15에서 표현되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태양신 아폴론에게 주목해 봅시다. 이 세상에 빛을 주는 신이 아폴론이라고 믿는 이들을 향해 주님은 자신의 눈이 ‘불꽃’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시편 19:6에 의하면 불꽃 같은 눈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함을 표현한 것이 분명합니다. 또한 주석 같은 발은 다니엘 10:6에서 가져왔습니다. 다니엘이 힛데겔 강가에서 보았던 환상 속의 세마포 옷을 입은 사람의 일부입니다.
- 단 10:6 또 그의 몸은 황옥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
이곳에도 횃불 같은 눈과 놋과 같은 팔과 발이 등장합니다. 발이 놋과 주석으로 되어 있다는 말은 강력한 힘을 가진 파괴적 존재를 말합니다. 그 어떤 존재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 심판자를 뜻합니다. 시편 2편에서 소개되는 하나님의 아들과 연관시킬 때 그 뜻은 더욱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그것은 모든 열방을 통치하고 심판하시는 심판주를 뜻합니다.
찌르는 눈과 짓밟는 발을 가진 그리스도는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처럼 교회에 다가오신다.(1:16) 이것은 두아디라에 유명한 신전을 둔 이방의 태양신 아폴로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하다. 그분의 영광은 교회의 뜻과 마음을 살피시며,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23절, 시 19:6). 그분은 회개하지 않는 자들이 고난과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이러한 예수님에 대한 소개는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사정을 알지 못하고, 자신들의 죄를 모른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주는 일종의 경고입니다.
칭찬
심판주로 나타났다고 해서 두아디라교회가 모든 부분에서 잘못한 것은 아닙니다. 먼저 주님은 그들을 칭찬하십니다.
- 계 2: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다섯 가지를 언급합니다. ‘사업’ ‘사랑’ ‘믿음’ ‘섬김’ ‘인내’입니다. 이것들이 처음보다 많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업’은 복수형으로 ‘행위’를 뜻하며, 이후에 소개된 네 가지 행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두아디라 교회의 특징은 성장에 있습니다.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는 표현 속에서 그들의 성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성장은 열정이자 자기 헌신을 통한 결과입니다. 이것은 마땅히 칭찬 받을만한 것입니다.
책망
주님은 두아디라교회에 칭찬을 하지만 매우 짧게 한 다음 곧바로 책망을 하십니다. 그것은 이세벨을 용납한 것입니다.
- 계 2: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성경 속에서 이세벨은 바알을 섬기는 아합의 아내였습니다 그 여 사제의 실제 이름인지 은유적 표현인지 알 수 없지만 정황상 이세벨은 구약의 이세벨과 닮아 있습니다. 먼저 그 여인은 자칭 선지자였고, 주님의 종들을 꾀어 행음하게 했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했습니다. 20절의 이야기는 발락에게 가르친 발람의 속임수와 닮아 있습니다.(버가모교회, 2;14)
20절에서 사용된 ‘꾀어’라는 동사는 요한계시록 안에서 사탄의 행위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12:9, 20:3, 8, 10) 또한 거짓 선지자들과 바벨론으로 형상화된 인물이 온 세상을 미혹하고 우상을 숭배하게 하고 음행 하도록 이끌었다는 점에서 이세벨과 닮아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단의 종인 이세벨이 ‘예수님의 종들’을 미혹해 우상을 숭배하게 하고, 음행 하게 한 것에 대해 화가 나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세벨이 기묘하게 조합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그는 자칭 선지자입니다. 아마도 두아디라가 섬기는 아폴론의 신탁과 연관이 있음이 분명합니다. 이러한 신탁은 신들에게 제사함으로 우상숭배로 이끌었고, 우상숭배는 곧 음행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교회가 어떻게 우상을 숭배하고, 음행에 빠질 수 있을까요? 우리는 다시 ‘꾀어’라는 말에 주의해야 합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세벨의 유혹이 교묘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그렇게 쉽게 넘어가겠습니다. 아마도 이세벨은 우상숭배를 문화의 한 부분, 또는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경제적인 생존의 문제로 유혹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교인들이 것을 몰랐을 리는 없습니다.
주님은 교회가 이세벨을 ‘용납했다’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이세벨의 가르침이 분명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였고, 그로 인해 주님께서 주신 회개의 기회를 놓쳐 버린 것입니다. 주님은 ‘회개할 기회’(21절)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왜 회개하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분명히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러 정황상 그들이 회개를 미룬 이유는 지금까지 그렇게 해온 것에 대한 생각과 행위에 관성이 붙었기 때문입니다. 악한 생각과 악한 행위가 몸에 배이면 그것을 떨쳐 내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것이 나쁘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신다는 것을 알지만 고치지 못합니다.
24절에 의하면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성령을 ‘하나님의 깊은 곳을 통달한다’고 표현합니다.(고전 2:10) 이것은 성령이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계획과 작정, 그리고 생각을 말합니다. 그런데 두아디라교회는 사단이 의도하고 획책(劃策)하는 의도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징계
회개하지 않는 이들을 향해 주님은 엄히 경고하십니다. 그들은 침상에 던질 것이고, 큰 환난 가운데 던질 것입니다.(22절), 또한 그의 자녀를 죽이겠다고 경고합니다.(23절) 은밀하게 자신들만이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23절을 보십시오.
- “…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약속
만약 회개하고 주님의 말씀을 붙드는 이들에게 약속하십니다.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고,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이 부분은 시편 2편 9절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원래 메시아이신 예수님께 적용하는 본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권능과 통치를 자신을 믿고 따르는 교회의 신자들에게 허락하고 계십니다.
또한 새벽별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새벽별은 로마 시대에 통치자와 권세자를 뜻했습니다. 그런데 계시록 22:16에서는 예수님 자신이 새벽별이라고 소개합니다.
- 계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만약 두아디아교회에 주신 약속이 계시록 22:16에 등장하는 새벽별이라면 신자들에게 예수님 자신을 주신다는 뜻이 됩니다. 그것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과 같은 권세와 통치를 허락하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대속사역을 말합니다.
- 행 16: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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